계약되지 않은 약속들
우리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한 가지 문장을 반복해서 배운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결국에는 나아질 것이다.
이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고, 희망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거의 의심받지 않는다. 오히려 이 문장을 의심하는 사람이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노력했는데 보상이 없었다고 말하면, 대개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아직 덜 노력해서 그렇다는 말, 조금만 더 버텨 보라는 말, 끝까지 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노력은 정말 보상을 약속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오랫동안 약속된 적 없는 계약을, 당연한 전제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현실에서 노력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같은 시간을 들이고 같은 에너지를 소모해도, 누군가는 도착하고 누군가는 제자리에 남는다. 이 차이는 의지보다 조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출발선, 환경, 운, 타이밍,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수많은 변수들이 노력의 결과를 좌우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노력이 보상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을 한순간에 공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믿는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방향이 틀렸다고, 조금만 더 하면 달라질 거라고.
이 믿음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동시에 우리를 소모시킨다.
노력에 보상이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구조를 의심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의심한다.
나는 부족한가. 나는 잘못 살고 있는가. 나는 실패한 사람인가.
이 지점에서 노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버티지 못하면 탈락이고, 멈추면 도태다. 보상을 받지 못한 노력은 곧바로 의미 없는 시간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보상이 없는 노력은 실패인가. 결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가.
우리는 노력을 지나치게 거래의 언어로 해석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만큼 주면 그만큼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 그래서 노력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청구서를 들고 있다.
언젠가 받을 보상을 미리 상정한 채, 지금의 고통을 견딘다. 그러나 삶은 거래를 약속한 적이 없다. 노력에 대한 대가를 보장하겠다고 어디에도 서명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계약이 존재했던 것처럼 실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한다.
어쩌면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노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일지도 모른다. 노력이 보상을 약속한다고 믿는 순간, 노력은 스스로의 가치를 잃는다. 오직 결과를 향한 수단으로만 남는다.
그렇게 되면 보상이 없는 노력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되고, 의미를 찾지 못한 시간은 곧바로 실패로 분류된다.
그러나 어떤 시간은 보상을 남기지 않아도, 사람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노력은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붕괴되지 않기 위해 수행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살아남은 것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취급한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시간은 이미 어떤 역할을 수행했을 수 있다.
노력이 보상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냉소가 아니다. 포기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낸다는 선택은, 결과보다 태도에 가까운 결정이다. 그것은 언젠가 받게 될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않기 위해 내리는 선택이다.
그래서 이제는 노력을 다르게 정의해 보고 싶다. 노력은 보상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한 행위라고.
보상이 오지 않아도 그 시간 전체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은 이전과 완전히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력은 약속이 아니다. 기대도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계속 존재하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보상을 기다리지 않고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