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 직장 / 삶에서의 성공 생존기
언젠가 토스 초기멤버 출신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되게 시니컬한 모습으로 우리가 하는 일들에 대해 여러 피드백을 주었었는데, 그중 아래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극단적이고 힘든 상황일 때,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명료해지더라'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문장이 이상할 정도로 자주 떠오른다. 목표가 무겁고 기대가 높고 압박이 강할수록 나 스스로 '내가 정말 이걸 하고 싶었나', '이 정도로 목표만 바라보고 허겁지겁 쫓으며 살고 싶진 않았는데', '난 이 정도 책임을 원했던 건가, 지금 나에게 너무 무거운 것 같은데' 같은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 그때마다 스스로 저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난 지금 이걸 하고 싶지 않구나' 점점 선명해졌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이런 속도로, 이런 구조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 달 목표는 이번 달 대비 2배 성장이에요. 물론 이번 달도 어려웠고 고생했지만, 지금은 박수칠 때가 아니에요. 다음 목표를 위해 무얼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8월 목표치를 120% 정도 상회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애초에 달성하기 불가능한 정도로 보였던 목표였고, 달성했으니 기뻐해야 마땅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남의 회사가 대단한 성과를 달성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거 같은 느낌정도였다. 스타트업에서의 목표, KPI 달성은 중요하고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링크드인에 '우리가 이런 대단한 목표를 세웠고, 그걸 상회하는 성과를 달성했습니다!'라 올리면 수 백개의 좋아요가 달림으로써 증명하듯, 모두가 목표, 목표 달성의 중요함을 공감한다.
다만 목표, 다음 목표, 그다음 목표, 그에 따른 KPI 지표, 수치, 데이터를 보며
'목표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걸까?'
'이 목표가 나에게, 동료들에게, 회사에게 무슨 의미일까?'
같은 생각들이 내 안에 서서히 고개 들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의 목표는 생존이다. 특정 시장에 반대되는 상상을, 그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최단거리로 달성하기 위해 달린다. 그렇기에 목표는 종종 압박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이번 달 잘하면 다음 달이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반대되는 상상을 하는 이들이 져야 하는 책임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 정도로 버겁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숫자와 지표를 보는 게 버거워졌다. 달성률이 떨어지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달성하면 다음 목표가 두려웠다. 기뻐할 틈 없이, 숨도 못 고른 채 항상 ‘다음’을 향해 달려야 하는 무한 반복의 고리에서 점점 지쳐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남극 정복을 목표로 했던 스콧과 새클턴. 두 탐험대가 있었다. 스콧은 남극점 도달이라는 목표 자체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었고, 물자 부족, 극한의 환경 등 목표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방향을 수정하지 않았다. 결국 목표를 달성하고 팀 전원이 사망하고 만다. 반면 새클턴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를 살려서 돌아간다”는 원칙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예상치 못한 위험 속에서도 전원을 살려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같은 남극을 향했지만, 목표를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고, 그 차이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요즘 나는 회사와 나의 관계가 마치 이 두 관점 사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조직은 스콧처럼 목표의 달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삼고 있는 반면, 나는 새클턴처럼 과정과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 같은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선명해지고 있다. 성공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
내가 원하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목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성장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목표가 사람을 압도하거나, 성과가 과정의 모든 가치를 잠식해 버리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오래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즐겁게 일하고 싶고, 동료들과 함께 호흡하며 성취를 쌓아가는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목표에 쫓기고, 서두르게 되고, 결국 목표 외의 함께 한다는 느낌, 감정적 교류, 즐거운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마주하면 나를 더 알아차릴 수 있다.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 하나씩 확인할 수 있다.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어긋나는 순간, 결국 둘 중 하나는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퇴사를 고민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목표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한 목표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더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