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는 이유
한 해를 돌아보며 2023년에는 다이어리만 6권을 썼다. 남편이 뭘 그렇게 썼냐 묻길래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게, 나는 도대체 뭘 그렇게 썼을까.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더 깊이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뭐라도 쓴 것 같다. 오랫동안 사회・문화적인 것들이 세뇌되고 쌓여 그것이 나인 줄 알게 된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선택지들 중 뭐가 좋을지 검색부터 하는 시대다. 뭐가 좋은지 나 말고 타인이 정해 놓은 것들 중에 더 나은 것을 고르기 위해 또 인터넷 세상을 뒤지고 떠돈다. 성인이 된 후 접하는 환경, 관계는 점점 변화의 폭이 줄어든다. 생각의 깊이와 너비는 고만고만 해지고 그 또한 우리의 생각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실체 없는 남의 호불호에 내 판단을 맡긴 채 틀은 더 완고해지기만 한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내 삶에서 내가 궁금한 것을 찾아 화두를 던지고 탐색하고 직간접적 경험을 해보아야 하는 것 같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고 다시 질문하는 행위를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몸과 마음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 내 몸과 내 몸이 대화한다면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기에 사람은 종이와 펜을 드는 것이다. 일기는 반으로 가른 내 몸이 되어준다. ‘일기 : 그날그날의 일/생각/느낌을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고 아주 두루뭉술하게 정의된다. 정해진 형식과 규칙 없음. 자유롭게 나의 생각, 감정, 경험, 지극히 사적인 모든 것, 자신에 대한 성찰 등을 기록하는 곳이 일기장이다. ‘일기에 뭘 쓰고, 어떻게 써요?’ 하는 질문조차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기의 본질은 자유로움이다. 그 자유로움 안에서 비로소 나를 단독적으로 비추어 볼 수 있다.
점점 일기에 담지 않게 된 것
돌이켜 보니 일기에 더 이상 어떤 불편함, 싫은 관계, 부정적 감정 같은 것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그런 글은 다시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읽는다 해도 도대체 거기서 뭘 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쓰면서 이미 들끓은 부정적인 감정은 눈덩이 굴리듯 더 커진다. 더 회상하게 되고 거기서 분노하거나 두려울 이유는 불어나기만 한다. 물고기만 건지려는데 온갖 바다 쓰레기까지 끌어올린 셈이다. 대신 반성은 기록하면 유용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일이 줄어든다. 그것은 나를 용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반성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용서할 수 있으므로.
그럼 뭘 쓰나. 뭘 쓰든 자유겠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일기를 훗날 어느 순간의 내가 읽을 것을 전제로 쓰게 되었다. 그러면 속상하게 하는 사건도 거기서 뭔가 건질 게 있음을 쓰면서 알게 된다. 이는 꽤나 쓸 만한 효과를 낳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고통스러울 일은 아니네’하며 쓰면서 어두운 면 뒤의 밝은 면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일기가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쓰레기 그물질’은 하지 말 것. 차라리 거기서 건진 값진 것에 대해 쓸 것. 정 부정적인 것을 뱉어내고자 한다면? 1. 연필로 대충 휘갈겨 놓고, 2. 외투를 입고 나간다, 3. 바람을 들이마시며 뛴다. 어두운 마음을 일기장에 배설한다고 나아진 적은 없지만, 뛰고 돌아오면 그 기분이 다소 허상이었음을 본 적은 많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가 최고다.
일기 같은 글은 나쁜가
개인의 내밀한 삶에는 그토록 유용성을 지닌 일기도 미움을 받기도 한다. 바로 ‘일기 같은 글’에 대한 타인의 비판 나아가 차가운 자기 검열로. 아무 생각 없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일기 같은 글은 나빠’라고 한다. 그리고 그럴 바에는 안 쓴다고 한다. 그런데 꼭 그럴까? 그것도 고정관념 아닐까? 일기 같은 글을 쓰다 자신과 타인을 보게 되고, 관계와 삶에 대해 생각하는데 말이다.
일기를 기꺼이 쓰다 보면, 자신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은 나 이런 거 싫어하네?
-내 욕구가 아니었구나.
-고생했네. 참 잘 지나갔어.
-이때 기분이 엉망이었는데, 왜 그랬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이런 생각도 했구나.
-지금 보니 하찮은 고민이었네.
-그땐 이게 왜 그리 좋아 보이고 중요하게 보였을까?
(등등)
글 쓰는 본인은 정작 실천하지도 못할 번지르르한 구호보다는 차라리 일기 같은 글이 반갑다. 지나친 자의식 과잉, 허영, 가식은 없다. 온라인에 공개된 일기 같은 글이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누군가의 일기 같은 글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나를 보게 된다면? 실제로 그런 글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일기를 쓰지만 나는 내 삶을 비추게 되며 끌려가듯 계속 읽었다. 그런 일기 같은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의도치 않게 미덕을 실천하게 한다면? 내가 접해 보지 못한 세계를 그리듯 상상할 수 있다면? 용기에 대해, 절제에 대해, 중용에 대해 저 일기 같은 글의 주인처럼 나도 오늘부터 뭔가를 행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그런 글도 단순히 일기 같다는 이유만으로 꽝이라 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그 사람과 계속 대화하고 싶게 한다. 함께 하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린 분명 서로 대화를 했는데, 왜 나는 내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까.' 그런 좋은 대화처럼, 좋음을 함유하는 글은 일기 같고 아니고를 떠나 읽는 이도 쓰는 이도 자신을 맑게 비출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글과 그걸 담은 책은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그것은 인문 과학 교양서적, 문학, 온라인에서 만난 글들, 노트든, 그런 요소를 지닌다면 자꾸 접하고 싶어 진다. 매일 펼치고 읽어 내려가고 만나고 싶어 진다. 읽으면서 시간을 잊게 된다. 그 속에서 자신, 자기 삶을 마주하게 되므로. 이런 경험을 또 일기로 쓰는 과정에서 타인을 맑게 비추는 자신만의 방법들을 찾아간다. 그러므로 일기를 쓰는 것은 매일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일기 같은 글이라고 다 별로라 할 수 없다.
모두 일기에서 시작한다. 매일의 내 삶을,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뜨거운 고민이 누군가에게 가치로 서서히 변해간다. 그 과정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일기 같은 글은 더 이상 일기 같지 않게 된다. 그때까지 모든 일기는 지속되어야 한다. 치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