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OPHYSIS Jul 04. 2023

선명한 것

요즘 화요일마다 아들의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 한 시간 반가량 따로 또 같이 책을 읽는다. 둘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푹신한 소파도 있고, 무엇보다 사서 분 이외엔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 조용하고 쾌적하다. 요즘 초등학교 도서관은 이렇게 좋은 곳이구나. 나 어릴 적 그 쿰쿰함은 기억에서 지워야 한다. <이수의 일기>라는 책도 둘러보다 빌릴 책 더미에 올려 두었다. 혜안은 나이만으로 얻을 수 없구나. 깊이 생각해 본 이들의 글은 영혼을 움직인다. 오랜만에 내가 콕 집은 분야나 책이 아닌, 아무 분야의 펼쳐지길 기다리는 책들을 편견 없이 들여다보는 시간. 어릴 때 당시엔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즐겨했던, 그 시간을 오랜만에 가지니 참 편안하고 그리웠다는 감정마저 든다. 이게 진짜 쉼이야 하며 그저 천천히 맛보았다. 최근 몇 년 간 가졌던 마음, 즉 내가 여기서 무언갈 배워서 써먹겠어 하는 마음 없이 순수한 흥미만으로만 옮겨 보는 발걸음. 그러다 문득,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걸까, 하는, 이제는 사치처럼 느껴지는 물음이 올라온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혹시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은 아닐까. 이 방향이 정말 깊이 원하는 내게 필요한 방향이 맞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 무구한 책들 사이에 머문다. 그 와중에도 선명한 것은 나중 아주 나중에 다시 돌아오리라 확신할 수 없는, 아들과 함께 하는 이 모든 따스하고 간지러운 느낌이 참 소중하다는 것, 너무 아쉬울 정도로 감사하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