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집 계약이 끝나지 않았던 상태라 한국으로 떠나기 전 두고갔던 짐들이 남아 있었는데, 대부분은 버리고 몇 가지를 챙겨왔다.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손에 쥔 물건을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고민이다. 필요 없는 물건이라면 과감히 버리면 될 터인데, 막상 손에 잡히면 쉽게 내던질 수가 없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크리스마스 참, 아이와 함께 만든 물건들, 누군가 건네준 사소한 기념품조차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정말 필요 없는 존재일까?” 하고 묻는 듯하다.
특히 물건 하나하나에는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스며 있다. 묵상 노트에는 그 시절의 고민과 간절함이 가득하고, 빛바랜 사진 한 장은 잊고 지내던 웃음을 다시 꺼내준다. 버리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고, 남겨두기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이 모순 속에서 마음은 자꾸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면서도 현실은 맥시멈리스트로 기울곤 한다. 책장에는 이미 읽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서랍 속에는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모아둔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단순히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시간을 지워버리는 것 같아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억은 물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감정은 이미 내 안에 남아 나를 이루는 조각이 되었다. 물건을 버린다고 해서 그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감히 내려놓음으로써 새로운 기억을 맞이할 공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오늘도 손에 잡은 오래된 물건 하나를 두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돌려놓았다. 언젠가는 버릴 수 있을까. 아니, 언젠가는 그것마저 필요하지 않다는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물건을 버리는 일은 단순한 정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대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를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미련과 애착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물건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물건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언젠가는 담백하게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