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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ly fire  아군사격

자가면역질환 autoimmune disease


오래전에 강원도 인제군에서 동계훈련 때의 일이다. 내가 복무했던 12사단 을지부대는 보병사단이다. 휴전선 철책근무를 주요 임무로 하기 때문에 무조건 걸어 다니는 보병이 전력의 대부분을 이룬다.

반면 11사단 이기자부대는 기동사단이다. 전쟁 시 최신식 트럭, 전차, 장갑차, 전투기, 헬기까지 동원해 신속히 공격하는데 전력의 전부를 이룬다. 일대일 대결로는 어떤 사단도 11사단과는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라 11사단 이기자 부대 하나와  보병사단 3개 (을지, 노도, 백두산 부대 )가 함께  맞짱을 뜨고 싸우는 전쟁 시물레이션을 하필 추운 한겨울에 한 적이 있다.

 전투기 한 대가 가지는 전투력이 2만 명의 보병과 같다는 말을  난생처음 몸으로 느꼈다. 하늘에서 낮게 내려오며 우리에게 전진하는 전투기 한 대가 내는 소리는  천둥소리 열개가 하나로 모여 귀를 찌르는 것 같았고, 아파치 헬기가 우리 중대를 산속으로 밀어붙이는데 총이고 뭐고 신발까지 벗어던지고 도망가고 싶었다. 땀에 젖은 군화는 혹한에 꽁꽁 얼어붙고, 배는 고프고, 도망치다 무릎은 까지고. 중대장님과 소대장들도 반쯤 정신줄을  놓은 것 같았다. 밤은 깊어 가는데 밥을 날라다 줄 식당 트레일러는 올 것 같지도 않고 수통에 든 물은 거의 얼어 버렸다.   이때 "띠띠"   무전이 날라 왔다.  2 소대장 김 중위목소리다. " 중대장님, 2킬로 전방에 트럭 다섯 대가 불도 안 켜고 천천히 우리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트럭이 소리도 안 나는 걸 보니, 최신식 트럭이 분명합니다. 이기자 부대 놈들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추격하러 온 것 같습니다. 오버 "

중대원 전체가 이를 꽉 깨물었다. 오늘 오후에 당했던 설움과 치욕을 만회할 기회가 왔다. " 학익진(鶴翼陳)을 펼친다. 2소대 3소대  길 맞은편으로 신속히 이동,  소리 안 나게  움직여. 여기는 내가 맡고 , 4소대는  길 앞에서 막아."

밤이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달빛을 통해 돌과 풀만 어렴풋이 볼 수 있다.

대형 트럭 5대가 우리가 펼쳐놓은 산비탈아래 진영으로 들어왔다. " 사격개시 "  " 탕탕탕탕, 뚜뚜 두두 "

물론 실탄을 쓰는 건 아니지만 신명 나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냈다. '늬네 다 죽었다.'  한 20분 신나게 소리를 내며 이기자부대  너네 모두 항복해 하고 있는데


" 사격 중지 xxxx "  누군가 거친 욕을 하며  야간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엉 12사단 을지부대 마크가 붙은 식당차들이다.'  

 

이기자 부대한테 잡힐까 봐 밤에도 헤드라이트를 안 켜고 천천히 밥을 나르고 있던 우리 아군 트럭을 순식간에 전멸시켜 버린 것이다.

나는 갓 상병을 달아 이등병, 일등병들 돌봐야 하고 내 위로 병장 선임들 챙기느라 진땀을 빼며 계속 밥을 날라야 해서,  계속 왔다 갔다 하다가  멀리서 " 군생활 끝났어 xxxx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중대장님 목소리 아닙니까?  김병장님 무슨 일이 까요? "

" 우리 중대장 옷 벗어야 될 수도 있어, 방금 오인사격, 아군사격 했잖아. 전쟁 중이었으면 무고한 우리 편 많이 죽었을 거 아냐.  이거 다 점수에 들어가. 

중대장님은 우리한테 안 들릴 거라 생각하셨겠지만 밤에 고요함과 적막함은 주변의 모든 소리를 흡수한다. 그 때문에 연대장님과  무전으로 통신하는 중대장님의 대화 내용을 멀리서도 들을 수 있었다. 

" 아 제가 밤이라 깜깜해서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었습니다. 낮에 실수들을 만회해야 한단 조급함에 제가 실수로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벤틀리는 미스터 웹스터가 키우는 4살 된 잉글리시 쉽독이다. 오늘 아침에 점상출혈 (petechiae, 點狀出血) 이 아랫배에 두 군데 보인다고 급히 왔다. 3달 전에 깊은 숲 속으로 캠핑을 갔다가 진드기에 물려왔다.  다행히 이번엔  진드기 몸통이랑  피부에 박힌 머리까지 잘 제거했고 라임병 증상이  없어서 일단 두 달 뒤에 와서 라임병검사를 하기로 했다.  Lyme Disease는  Tick에 물리면 tick안에 있는  Borrelia burgdorferi 박테리아 가  숙주의 내부로 옮겨와 걸리는 병이다.  Lyme Disease 검사엔 ELISA (enzyme-linked immunosorbent assay)란 항원항체 검사법이 흔히 쓰인다.  피 3방울만 넣으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lyme bacteria 랑 싸웠던 기억을 가진 항체들만 양성으로 나오기 때문에 최소 45일에서 60일이 지나야지만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45일 전에 하는 검사는 위음성 반응이 많기 때문에 믿기 힘들고, 어쩔 땐 라임병 증상이 있는데도 안 나올 때도 있다.  미스터 웹스터는 당연히  60일 후 오기로 한  예약날짜를  잊어버렸고( 자기가 급히 어딜 가야 된다고 )  당일날 예약을 캔슬했는데.   '난 그가 왜 않오나? ' 싶었고 ' 무소식이 희소식이긴 한데 ' 하면서 잊어버렸다. 사실 내가 왜 안 오냐고?  강요를 했다가 테스트가 아무 이상이 없으면 내가 돈 벌려고 작정하고 오라고 한 게 될까 봐,  나도 그냥 좋은 게 좋은 거겠지 하고 너무 긍정적으로 안이하게만 생각했었다.  근데 오늘 점상출혈을 보니 겁이 덜컥 났다.  ELISA 테스트에선 positive 가 나왔다.  사실  최근 감염 즉 active 한  current infection 인지 아니면 과거 라임병에 노출된 위양성인 건지 확인하려면 Quantitative Measurement of C6 Antibody 이란  항체의 양을 계산하는 테스트를 해야 하지만 점상출혈 증상이 있으므로 치료를 빨리 시작할수록 유리하다.  라임 박테리아가 뿜어내는 borrelial lipoprotein BBK32 이란 지질단백질이 숙주의 내피세포 endothelial cells, 혈소판 platelets, 연골세포 chondrocytes, 세포외기질 extracellular matrix  들과 교류하면서 숙주의 면역세포를 헷갈리게 교란한다.  자가 면역 질환(自家免疫疾患, autoimmune disease)은 면역반응이 실수를 한 것으로 건강한 세포( 특히 적혈구나 혈소판 )를 해롭게 보고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신체를 지키는 다양한 면역세포(B 림프구, T 림프구, 대식세포 등)와 면역항체가 자신의 건강한 조직을 공격함으로써 발생하는 다양한 손상(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조직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전신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병이다.  다행인 건 벤틀리가 기운이 없거나 빈혈증상은 안 보여서 자가면역질환을 억제하는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를 보내고 doxycycline 란 항생제도 30일분을 먹이라고 보냈다.


일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미스터 웹스터가 전화를 했다.


"응급실 일하는 수의사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자가 면역질환이면  이머전시에서 수혈도 받으면서 최소 이삼일은 계속 지켜봐야 한다던데 그냥 약만 주셔서 너무 불안해요, 밤에 어떻게 될까 봐? "


" 제 생각엔 먹는 약만 먹이면 될 것 같은데......   너무 걱정되시면 수의사 친구분 말씀처럼 응급실에서 이삼일 지켜보는 것도 안전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


"  그럼 병원비는 다 내주셔서 할 것 같아요, 실수하신 거니까,  그래서 전화했어요 이머전시 가기 전에  응급실 병원비 다 내주시는 거 확인하고 갈려고요 "


" 제가 실수를 하다니, 무슨 말씀인지?  진드기 물리고 두 달 있다가 벤틀리  데려오셔서 검사하기로 했는데

당일날 캔슬하시고 그 뒤로도 안 오다가 한 달 지나서 오신 거잖아요, 그것도 점상출혈이 있으니까 오셨지 아무 이상이 없었으면 몇 달 지나도 안 오셨을 거잖아요? "


"제 친구말은 tick에 물리면 증상이 있던 없던 무조건 항생제를 시작했었어야 했다고 하던데요 그래야 라임병으로 인한 자가면역질환이 안 걸리다고? "


"벤틀리 가 작년에 캠핑이나 산행 갔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몇 번이나  tick에 물렸는지 기억나세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 최소 2번이었고 집에서 tick 제거했다고 이멜로 사진 보내신 것까지 하면 4번은 물렸잖아요. 그럼 한번 시작하면 한 달씩 먹어야 하는 항생제를 4번이나 먹으면 일 년에  4달 동안 항생제를 먹이는 겁니다. 제가 tick 안 물리게 tick 예방약 먹이던지 tick 막아주는 약을 몸에 뿌리라고 말씀드렸고요. 처음 걸렸을 땐 예방차원에서 약을 먹이기도 하지만. 환자가 증상을 안 보이면 굳이 항생제를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


"그럼 왜 작년에  Lyme Quantitative test는 안 했어요? 내 친구 말은 꼭 해야 한다던데? "


"  친구분께서 말씀하시는 게 Quantitative Measurement of C6 Antibody라고 항체의 양을 계산하는 테스트인데, 작년에 ELISA  테스트에서 음성이 나와서 안 했습니다. 양성도 아닌데 항체가를 측정할 수가 있나요?"


내 생각엔 지금은 응급실 까진 않고도 될 것 같고, 자가면역질환이 왜 걸리냐고 다시 물어봐서 내 군대생활 중 동계훈련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10분 이상 썰을 풀었다. 자기 몸의 면역체계가 실수로 아군사격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이다.


"나는 군대를 안 갔다 와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고, 벤틀리가 잘못될까 봐 너무 걱정돼요. 당신이 다 책임질 수 있겠냐고요? "


나도 겁이 덜컥 났다. '잘못되면 내가 다 뒤집어 쓸건대'

" 그렇게 걱정되면 응급실 가시는 게 맞습니다만, 제가 응급실 비용을 다 내야 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 당신이 괜찮다고 했잖아요, 응급실 안 가도 된다고. 그러니까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져야지 "


짧은 시간 정적이 흐른다. 나의  영혼은 강원도 인제 원통 12 사단 동계훈련장 산비탈 아래를 달리고 있다.

혹한의 겨울이라 칼날 같은 바람이 두들겨 패듯 내 얼굴을 때려 눈도 못 뜰 것 같지만,  등에는 이미 땀이 흥건히 젖어있고,  숨이 목밑까지 차 올랐다. 전투기에 쫓기면서 귀가 찢어질 것 같고, 헬기에 내몰려 무릎 깨지게 땅에 뒹굴면서도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만일 우리 뒤에 있던 노도부대 포병대에서 대포로 지원사격을 해주고 , 앞산 중턱에 미리 자리 잡은 백두산 부대에서  MG50(M2 중기관총)로 대공사격을 해 주었다면 전투기와 헬기가 땅 밑 가까이 까지 내려올 수도 없을 텐데 하는 생각 말이다.

내가 보낸 면역 억제제 스테로이드는 포병대의 지원사격이고 , 30일간 먹여야 하는 doxycycline 항생제는 겁 없이 땅 가까이 내려오는 헬기를 부담스럽게는 할 수 있는 MG50 중기관총의 대공사격이 될 것이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리다  ( 로마서 8:28)  

 나와 미스터 웹스터는 적이 아니며, 우리 둘의 목표는 벤틀리가 숲 속 깊은 곳을 탐험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공동의 선한 목표를 가진 협력자의 관계이다.  그저 걱정, 조급함, 두려움이 뒤 섞인 감정덩어리가  우리 둘을 적처럼 느끼게 하고 있는 상황이 자가면역질환이 자기 몸을 공격하는 것 과 똑같이 보일뿐이다. 둘 다 상황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면 된다.


" 네 , 제가 100% 책임질 겁니다. 저 믿고 약 먹이세요 "

 

이 추운 겨울 오늘도 날을 세워가며 최전방 철책에서 야간 근무하는 12 사단 후배 장병 여러분 고맙습니다. 아직 많은 인생을 살아본건 아니지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 맞는 말 같습니다.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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