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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피하려다 똥 밟은 사연

선과 악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내가 미국에 오기로 결심하게 된 사건   

" 이 xxx야, 여기 아님 동물병원 없는 줄 알아, xxxx  뒤질라고, 한대 쳐버릴까 보다, 이 xxx "   내 안경은 책상밑으로 떨어졌고, 왼쪽 빰 위를 맞았는지 왼쪽 눈이 따갑다. 코끝도 찡했는데 다행히 코피는 안 나나 보다. 안경이 없으니 보이지도 않아 상황 파악이 더 안 되고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책상밑으로 몸을 숨겼다. 안경 떨어진 쪽으로 몸을 굽히고 바닥을 더듬어 겨우 안경을 찾아 썼다. 이제야 주변이 다시 정리되어 보인다. 책상 위로 일어서니 저쪽 끝에 애견미용실장님이 보이고 원장님도 보인다.

너무 오래돼서 환자 이름도 기억이 않나고, 같이 온 주인 얼굴도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욕 지껄이는 아직도 귀에 생생하고 자다가도 한 번씩 깰 만큼 나한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2주 동안 귀에 고무줄 묶어서 피고름으로 떡져서 왔길래, 왜 굳이 고무줄을 귀에 묶어서 애를 고생시키냐고  혼내려다가 되려  쌍욕 먹고, 싸대기 맞아 안경 날아가고 ,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사과했던 나에 비겁한 행동이 더 큰 상처로 남아있다.   

가끔 ' 뭘 잘했다고 이 난리야, 임마 ? '  하며 당당하게 맞서 싸웠어야 했을까? 아님 나도 한 대 때릴 기세로 덤벼 들었으면 어때을까? 난 그때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고 상대는 중년이 넘은 아저씨였기 때문에 체력으로는 해볼 만했을 텐데 말이다. 난 그때 사회 초년생이었고, 월급 받고 일하는 말단 수의사였기에 원장님 얼굴 봐서 무조건 참아 야만 했다. 사실 내가 원장이었어도 더 참으면 참았지 싶은 그 맘을 알았기에 방금 전까지 같이 웃으며 점심식사하던  원장님과 애견 미용실장님, 이두분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우리 셋다 몸이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니 말이다.  폭력이 허용되고, 인격과 동물에 권리가 보호가 안 되는 이런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선 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달 뒤 추석 때쯤에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께 나는 미국에 가서 수의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께선 기가 차서 할 말이 없으신지 그냥 웃으시며 한번 해보려면 해보라고 했다.

사실 그랬다.  우리 부모님께선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해야 사회에서 출세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옛날 시골 분들이셨고, 나는 국민(초등) 학교 1학년부터 천자문을 시작으로 6년 내내 한문학원만 다니던 촌놈이니 말이다.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알파벳이 필기체가 있고 또 필기체 안에 대문자와 소문자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4가지 알파벳에 익숙해지는데 거의 한 달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영어 조기 교육의 혜택과는 재정적, 시간적, 거리적으로 너무나 동 떨어 저 있던 내가 미국이라니 그것도 미국에서 수의사를 한다고 하니 그냥 제  풀에 지쳐 떨어질 거라 생각하신 것 같다.  


서울에 다시 돌아온 뒤 나는 매일 새벽 6시 전에 동네 도서관에 1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항상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있었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하기에 오전 오후 번가라 가며 동물병원 두 군데를 다니며 대진수의사로 일했다. 주경야독하는 생활을 3년 정도 했었다.  매년 재수하는 여학생들이 똑같이 내 앞자리에 앉자 있었는데   1st 첫해는 단발머리, 2nd 둘째 해에는 긴 생머리 여학생, 마지막 3rd  삼 년째는 한 여름에도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와서 기억도 안 난다. 아주 짧은 머리였던 것도 같다. 공부하다 잠깐 모자를 벗을 때 대머리 까진 아니어도 머리가 군인처럼 짧았던 것 같다. 삼 년 동안 세명에 여학생이 바뀌었다. 다들 원하는 대학에 갔으니까 돌아오지 않았겠지......  밤에 잠들 땐 항상 CNN을 켜 놓고 잠을 잤다.   매일 잘 때 CNN 듣는다고 티브이를 켜놓고 자서 그런 지 2년쯤 지날 땐 심장이 두근 거리는 심실세동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반면 노력에 대가도 있었다. 드디어 CNN 이 들리기 시작했다. 3년 차엔 CNN이 90%까지 들리 기 시작했다. 영화를 봐도 다 들렸다. 이게 뭔가 하면서 대견해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처럼 밤낮으로 하면 6개월 정도 면 다들 내 실력이 된다고 한다. 영어조기 교육이 좋긴 좋은가 보다 했다. 어쩌겠는가 시작이 다른걸.

들을 수 있으니 이제 말하는 연습을 해야겠어서 종로에 회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회화 학원에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 멋진 아가씨들이 많았다. 더 열심히 해서 멋지게 보이고 싶었지만 어릴 때 굳어진 영어발음 잡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 오빠, 동물병원 하면서 한국에서 살면 안 돼?  나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만 놔두고 미국 가서 살 자신이 없어 "  

회화 학원 다니면서 알게 된 대학을 갓 졸업한 아가씨는 지금의 내 와이프 빼곤 세상에서 젤 예쁜 여자였다.   '그래그래,  빰 한 대 더 맞는 게 뭐가 대수냐, 나랑 있어만 준다면야.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빰을 맞아도 용기를 내어 그녀 얼굴 보는 낙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회 초년생의  4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중요한 시간이다. 나랑 비슷할 때 졸업한 동기 녀석들은 모두 자리 잡고 동물병원 원장 소리 듣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제부터 다시 병원자리 알아보고 역세권을 중심으로 시장조사, 입지 선정, 동물병원 인테리어, 의료장비, 은행융자등을 모두 알아봐야 했다. 젤 큰 문제는 영어 공부 하느라 그동안 소홀히 했던 인맥들을 다시 다 찾아야 했다.  

" 누구라고, 너 미국 간 거 아녔어? 갔다 왔어?  나 좀 바빠, 나중에 전화할게 "

" 응 나 미국 안 갔어, 그래서 동물병원 자리 좀 알아보려고, 좀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뚜뚜뚜뚜 "

한 6개월을 시장조사차  수도권 전철역을 안 가 본 곳이 없이 열심히 돌아다녔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녀가 날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너무 순진했었다.  모처럼 저녁같이 먹고 차를 마시는데, 화장실 잠깐 간다고 두고 간 핸드폰으로 전화가 계속 왔다. 급한 일 인가 싶어 그녀의 핸드폰을 열어 봤는데.  도현오빠랑 주고받은 전화 기록이 최소 16개는 되어 보였다. 새벽 2시 3시까지 왜 이렇게 전화를 주고받았을까?

 " 도현오빠는 이미 오빠 앞으로 아파트가 있어, 차도 있어서 매일 퇴근하고 데려다주는데 편하고 좋더라.

나는 오빠가 미국 가는 꿈 포기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봤으면 좋겠어. 동물병원 새로 시작하는 거 버거워하는 것 같아서 옆에서 내가 미안하더라고 "

" 응 고마워, 어제 은행융자 승인 나서 내일 계약하려고 했거든, 미리 말해줘서 고맙고. 넌 누구한테든 사랑받고 살 거야. 우리 인연이 여기 까진가 보다. "   

고마워 지금까지는 미국에서 와서 한 번도 빰을 얻어맞진 않았어.  물론 내가 입 조심한 덕도 크긴 하겠지만 말이다. (개네 들이 내 영어 발음 때문에 내 말을 못 알아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


미국에 온후 몇 년 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가보니 나무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총을 쏘는

레드넥 Redneck ( 미국 남부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햇볕에 타서 목이 빨개지는 백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현대에 와서는 못 배우고 고지식한 강경 보수적 성향 백인을 비하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을 마주하고 한마디 하려는데 총을 먼저 나한테 들이대며 " Tresspassing 무단침입이야 "  "너를 총으로 쏴도 나는 정당방위야" 하는데 난 이번에도 비겁하게 도망쳤다. 오줌까지 쌀뻔하고 말이다.  내 빰을 때렸던 손님은 그래도 자기 개 이쁘게 하려고 리본 묶어주다 지적당하니까 자기 분에 나한테 화를  낸 거지만 저 레드넥은 불쌍한 고양이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극악 무도한 미친놈이 아닌가 '저 새끼가 훨씬 나쁘다.'  근데 빰 한대로 끝날게 아니고 총으로 목숨을 위협하니 이건 뭐  똥차 피하려다 똥 밟은 사연 보다 더 기가 막히다.


선과 악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추운 겨울 시장 좌판에서 김밥과 떡을 파시면서도 교통사고 난 주인 없는 개를 돈 걱정 말고 살려 달라는 천사 같은 김 할머니와 피부과 전문의를 만날 돈이 없어 본인은 피부병으로 온몸에 반창고를 더덕더덕 붙이고 다니면서도 나이 든

불 마스티프 클로이 (몸무게가 140파운드 ) 피부병에 수 십만 원 하는 약을( 몸무게가 많이 나가 약값도 많이 나간다)  아까워하지 않는 브라이언도 있다.  내 마음 바꾸면 여기가 천국이요 극락이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8:18)


도현오빠란분 그땐 내가 경황이 없어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고마운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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