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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Jan 31. 2024

역사, 개인의 삶으로 보다

<포레스트 검프>

 근 한 달 일이 있어 제주 4·3사건만을 공부했고, 생각했다. 그 전에도 제주 4·3사건을 공부해왔지만, 이번 공부는 달랐다. 너무 힘들었다. 귀찮아서 안 봤다고 생각했던 무수한 증언집들을 탐독하며 내가 이 증언집들을 왜 안 봐왔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잔인했고, 참혹했고, 절망적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을 하나하나 맞닥뜨리는 그 책들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건 끝없이 가라앉는 어둠뿐이었다. 늘 숨이 막혔고, 두려웠다. 개인의 삶 하나하나가 너무 무거웠다. 보고 있는 내 어깨가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봐오던 역사책의 제주 4·3사건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처럼 개인의 삶을 담은 기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검프의 기억이다. 중간중간 제니의 기억이 섞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의 기억이며 그의 말이고, 그의 삶이다. 그의 주변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제니 가족의 아동 성폭력, 조금 지능이 낮은 포레스트를 향한 차별, 흑인 차별, 베트남 전쟁, 히피와 베트남 반전 운동, 대통령 암살, 핑퐁 외교. 애플사의 창설 등등 미국 현대사에서 굵직한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우연히 그 모든 사건과 연관된다. 그는 이런 사건들을 별 것 아니었다는 듯이 묘사한다. 꽤 심각한 일들이 많았음에도 그에게 그런 일들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정작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주변인들뿐이다.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제니와 만나고 이별한 것이었고, 버바를 전쟁에서 죽음으로 잃은 것이었다. 또한,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과 어머니가 해준 말,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다. 그는 곧은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했으며, 평생을 그들을 챙기며 살았다. 슬프게도 그들은 모두 떠났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그에겐 너무 깊고 어려운 것이어서 그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 뛰었고, 다 뛰고 난 후 그는 드디어 제니와 함께했다. 하지만, 제니는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그렇게 제니는 포레스트를 떠나갔다. 그리고 제니의 묘 앞에서 포레스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에 대해 말을 내뱉는다. 


 “저마다 운명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바람 따라 떠도는 건지 모르겠어. 내 생각엔 둘 다 동시에 일어나는 거 같아.”


 댄 중위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했고, 포레스트의 엄마는 운명은 초콜릿 상자에서 꺼내 먹듯 선택하는 것이라 말했다. 자신이 찾는 것이라고. 이 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올곧은 그가 내린 결론은 그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전부 포용했던 그의 모습이 이 말에 담겨 있는 듯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그가 내린 삶의 정의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역사적 사건들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있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그는 그들을 올곧게 사랑했고,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역사적 사건들보다 포레스트 검프가 느꼈을 ‘상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상실이 내게는 너무 크게 다가와서 나는 영화를 보다 세 번 정도 길게 멈추어야 했다. 버바, 엄마, 제니의 죽음 때. 그리고 포레스트의 삶과 대조되는 삶을 살았지만, 포레스트의 삶에 가장 큰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제니의 죽음을 맞이할 때는 도저히 더 영화를 보기가 힘들었다. 새우잡이를 같이하자고 할 친구도, 인생이 초콜릿 박스라고 조언해 줄 엄마도, 자신이 가장 사랑한 반려자도 없는 그의 삶이 너무나 슬펐다. 그토록 올곧은 사람이 겪어야 했던 상실들. 그래도 마지막에 그의 삶이 슬픔으로만 남지 않은 이유는 그의 아들 덕이었다. 그가 받은 사랑과 이야기를 온전히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똑똑한 그 아이는 아마 포레스트의 사랑을 받으며 포레스트와 같은 올곧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군대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적 사건들을 풍자하는 것을 인상 깊게 보았다. 몇 년이 지나고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자 그런 역사적 사건보다 ‘포레스트 검프’라는 개인의 삶이 더 인상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보통 과거를 ‘공식적 역사’의 틀 안에서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가장 공인된 사실이니까. 하지만, 역사적 사건의 진실은 여러 가지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 역사적 사건은 다르게 기억된다. 이는 4·3사건처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감정적 이해를 깊게 만들거나 검프의 삶처럼 역사적 사건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만든다. 


 역사는 하나라고 많은 이가 생각하지만, 정작 역사는 많은 이의 삶에서 다르게 적히고, 포레스트 검프처럼 누군가의 삶에서 역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역사 또한, 사람이 적어내고 편집한 이야기니까. 역사의 무언가가 현재 사람의 삶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아마 포레스트 검프는 이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닐까. 주변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무척이나 올곧고,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역사의 모든 관점이 그저 사람이 사는 삶의 관점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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