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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May 30. 2022

누군가 아직도 봄이라 하기에..

벚꽃은 봄이 왔음을 알리고 목련은 곧 벚꽃이 필 것을 알린다.

마음에 두고 즐겨 찾는 카페 창가에 커다란 나무 한그루. 늦겨울 앙상한 가지를 보며 목련나무임을 알아봤다.

흰꽃을 피울까 자주꽃을 피울까. 어느 주말 끝 늦은 밤 서둘러 달려갔더니 앞마당 목련과는 달리 여전히 대부분은 꽃망울이고 , 몇 개 피어난 꽃들은 이미 지저분하게 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은 벚꽃보다 목련을 더 좋아했다.

인형의 하얀 치마 같기도 하고, 팝콘 같기도 하고, 이쁘게 쌓아둔 생크림 한 덩이 같기도 한 사랑스러운 목련이었다.

꽃을 따지 마라 한다. 하지만 목련은 꽃이 아니라 열매 같다. 크고 하얀 목련을 손아귀 한가득 쥐어보고 싶은 욕망이 불쑥 솟아나곤 했지만 다행히 목련꽃은 항상 내 키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그런 목련이 어른이 되고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유일한 꽃이 되었다. 어릴 때는 보이지 않았던, 꽃이 지는 모습이 어느 날부터 신경이 쓰이더니 이제는 그 추함이 피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상쇄할 만큼 크게 다가온다.

넌 나뭇가지에 달려 있을 때부터 짓이겨지는구나... 바람결에 날려 존재가 사라지는 벚꽃과 다르게 넌 예쁜만큼 처참하구나... 다소곳 고고히 다문 꽃잎은 모든 걸 보여주려는 듯 벌어질 대로 벌어지고 그러다 못해 허공에 있는 널 누가 밟기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되는구나...


타이밍.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몇 년 만에 우연히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일. 앞으로 평생 또 만날 일이 없어 그 순간의 내 모습이 상대방에게는 평생의 내 모습이 될 그런 일. 손에 잡히는 대로 짝짝이 옷을 입고, 엉망인 머리는 모자로도 안 감춰지고, 화장은 고사하고 눈썹이나 제대로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라면 두 개 담고 털레털레 걷다가... 그런 모습으로는 절대 보기 싫었던 누군가를 만났던 그런 일.


그날 목련과 내가 그랬던 것일까. 그 후로 못다 핀 꽃망울들이 예쁘게 피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시간이 없어 목련을 다시 보지 못했다.

주말 두 번 잘못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고, 그런 주말 네 번 놓치면 세월은 어느덧 2년을 흐르고 있으니...

목련, 벚꽃, 청보리, 코스모스, 단풍... 모양은 제각기 아름다우나 느낌은 하나인 이유이다.

예쁜 모습을 보지 못한 것도, 예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다 기막히게 슬픈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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