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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Jun 04. 2022

밤바람과 사이렌

거리에서 오늘의 7번째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오래전 어느 토요일 저녁 약속 장소에 나가려고 부랴부랴 지하철 역에 도착한 순간 소방차가 열대 넘게 지나간다. 사이렌 소리가  굉장히 다급하게 느껴졌다.

어느 집에 저렇게 큰 사고가 난 것일까.

그날 처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 걱정이 되어 그 자리에서 진심 어린 기도를 했다.

' 저 가정을 지키시어 무탈하게 하소서...'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를 향해 반쯤 갔을 때 울리는 휴대폰. 지인이 우리 아파트에 큰 화재가 났음을 알려주며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날을 떠올리면 지하철을 다시 타고 집으로 오기까지의 기억은 아무것도 나지 않는다.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던 가족들, 애탔던 내 마음, 전쟁터 같았던 아파트 마당, 그리고... 어둠과 가득 모인 사람들 틈에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나타난 우리 가족들. 우린 울어야 하는데 웃었다. 그 순진하고 밝은 웃음소리가 눈물만큼이나 강렬하게 모든 마음을 말해줬다.  

그 순간 단 하나. 지하철역에서 다급한 소방차의 행렬을 보며 진심을 다했던 나의 기도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후 여러 가지 피해로 우린 한동안 지독한 고생을 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주셨음에 그저 가슴 쓸며 감사하고 또 감사했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길거리에 들리는 모든 사이렌 소리에 짧게나마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무심코 지냈을 땐 몰랐던 소리들. 어떤 날은 내 귀에 들리는 것만도 하루에 열 번이 넘는 응급상황들이 발생한다.

내가 기도하는 그 순간은...

누군가들의 지옥 같은 절망이,

혹은 나는  아니라는 이기적 안도와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혹은 같은 뜻을 바라는 간절함과 기적을 향한 소망들이 함께 어우러져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6월의 밤.

사방으로 열어둔 문을 통해 밤바람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바람을 맞으며 잠들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 돌아왔다.


치 앞을 모르는 인생에서 퇴근 후 이렇게 편안한 밤 시간을 맞이 할 수 있다는 건 나로 인해 계획된 당연하고 예측 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란 걸 난 안다.

돌보시는 손길과 나에게 허락된 절대적 은총의 결과임을...

그리고 누군가는 갖고 싶어 온 맘 다해 갈망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사이렌을 위해 보호와 회복을 기도하며 미안하게도 난 또 그들로 인해 감사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오늘의 8번째는 더 이상 없길...

부는 바람이 축복인 계절.

두 번의 감사로 한 번의 불평을 희석하며 이 계절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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