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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0. 2024

<2년차 귀농인의 하루>색소폰 동호회

-귀농 2년차에 경험한 다섯번째 이야기

  “인원 제한이 있어서, 등록이 가능할 지 모르겠네요.”

  둔내면사무소에 들렀다가, 우연히 주차장에 걸린 현수막을 발견하였다. 둔내면 주민자치프로그램들이 개강을 앞두고 등록을 받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던 색소폰 수업도 프로그램중 하나였다. 그런데 등록기간이 이미 지난 후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둔내면 담당자에게 물어보니까, 결원이 있어서 등록이 가능하단다. 수강료를 재빨리 입금하면서, 신청 절차를 마무리하였다.

  횡성으로 이사오기 전에도 수년동안 색소폰 학원을 다녔었다. 노래를 못하는 나에게는 색소폰이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음악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탓에 진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꾸준히 연습을 했었다. 덕분에 색소폰으로 항시 연주 가능한 곡 수가 10개 이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인천에서의 직장생활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시점부터 색소폰을 잡지 못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서, 음악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색소폰 연습을 3~4년 하지 못하다가, 2023년 겨울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것이 2024년 둔내면 색소폰 동호회의 등록으로까지 연결된 것이다. 

  

  첫 수업시간인 2024년 3월 6일 오후 7시에 맞춰서, 둔내 복합 체육센터의 동호인 연습실에 들어갔다. 첫 수업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날 배울 곡을 불고 있었다. 이미 연습을 많이 한 노래인 것처럼 잘 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계속해서 색소폰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분들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간단하게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것 같았다. 신입회원들은 나를 포함해서 3~4명에 불과하였다. 소개를 하는 강사님의 경력도 특이하였다. 전문적으로 색소폰을 배운 분이 아니었다. 둔내면 색소폰 동호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강사까지 맡게 된 분이었다. 둔내에서 난을 재배하는 농부이기도 했다. 

  수강을 신청한 사람이 15명이었는데, 첫 시간에 10여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어린 나이였다. 거의 대부분의 동호회원들이 60~70대였다. 일선에서 은퇴하고 제2의 삶을 살면서, 취미로 색소폰을 즐기는 분들이었다. 

  동호회원들의 나이는 연습곡을 선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오래된 트로트곡들을 중심으로 연습하곤 했다. 나는 70~80 포크송에 익숙하였기에, 트로트와는 정서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는가!


  “형님만 테너 색소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을 알토 색소폰 중심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어요.”

  색소폰 강사님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회원에게 불만 있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였다. 색소폰 동호회원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토 색소폰으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 분만 유독 테너 색소폰으로 연습을 했다. 테너 색소폰의 소리가 좋단다. 그러다 보니까, 알토 색소폰과 음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사님도 알토와 함께 테너 음계를 그려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음계가 다르다 보니까 헷갈려. 더군다나 꾸밈음이나 애드립이 들어갈 때는 더 어려워.”

  형님이라 불리는 분은 색소폰에 입문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연습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 보였다. 혼자서 다른 음계의 악보를 연주하다 보니까, 혼란스러워했다. 그 날은 짜증을 내면서, 색소폰 배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내뱉었다. 강사님도 짜증 섞인 대답을 하였다. 한 명이라도 테너 색소폰으로 연습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준비해야할 것이 많아진 탓이다.  

  이들간의 불만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생님과 학생간의 대화였다. 선생님이 존대말을 쓰는데, 학생은 반말로 대꾸를 하였다. 선생님의 불만에 대해서 학생도 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시골에서는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수강생인 나이 많은 형님의 사과로 일단락 지어졌다. 


  내가 과거에 다녔던 색소폰 학원은 도시에 있는 일반적인 학원의 모습이었다. 선생님과 학생사이의 관계는 수평이 아닌 수직적이었다. 선생님이 가르치고, 숙제내고, 검사하고… 때로는 칭찬하고 때로는 꾸중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연습하는 곡도 트로트보다는 올드 팝이나 우리나라의 7080 노래들이 많았다. 

  둔내면의 색소폰 동호회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한편 이것이 농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농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60대 이상의 연령이기 때문이리라.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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