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한번째 글
산채마을의 길 건너편에는 삼천여 평의 더덕 밭이 펼쳐져 있었다. 3년차 더덕 잎들이 무성하게 밭을 덮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밭에서 더덕을 재배하는 사장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1년생 더덕은 볼펜 두께 정도에 불과한데, 2, 3년생은 우산 손잡이보다 두꺼워지고 때로는 사람 팔목만큼 자라기도 하죠. 더덕은 크기가 아니라 굵기가 중요하답니다.”
더덕은 강원도뿐 아니라 날씨가 따뜻한 제주도에서도 많이 생산된다. 하지만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더덕이 더 맛있고 영양분도 많아서, 강원도 더덕이 더 인기가 좋단다. 토마토에 이어서 횡성군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물이기도 하다. 2022년 6월 마지막 주에 더덕 수업을 하게 된 것도 횡성군의 중요 재배작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횡성에 정착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에게는, 더덕이 재배 품목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리는 산채마을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더덕 밭 사장님은 더덕에 적합한 토양의 특징부터 시작해서, 돈분이나 계분, 우분 같은 것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법, 파종하는 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던 중 더덕 씨와 관련해서,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더덕 씨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코팅해서 보관을 하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열에 의해 더덕 씨의 날개가 제거되어 버리죠. “
더덕 씨에 날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데 사장님의 다음 말이 더 흥미로웠다.
“원래 날개의 역할은 씨가 땅을 파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날개가 없어진 씨는 사람이 땅에 집어넣어 주어야 해요.”
더덕 씨가 날아다니는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땅을 파고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추운 겨울을 세 번이나 이겨내야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더덕 입장에서는, 땅속 깊숙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자연의 신비였다.
사장님은 3만 5천여평의 밭에서 더덕 농사를 짓고 있고, 매년 1만에서 1만 5천평의 면적에서 더덕을 수확한다고 한다. 더덕은 연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곳에서 3년동안 더덕을 재배하고 나면 다른 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횡성군 청일면과 둔내면 일대에서 더덕 밭을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큰 규모의 밭을 임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덕 농사꾼은 여기 저기 밭이 있는 곳으로 돌아다니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었다. 나와 같이 귀농을 하고자 하는 사람 입장에서, 더덕 농사는 진입장벽이 높아 보였다. 마을 사람들과의 친분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밭을 임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확이 이뤄지기까지 최소 3년동안은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투자만 해야 된다는 것도 부담이다. 농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귀농인에게는 특히 그렇다.
나에게는 떠돌아다니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 제일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젊은 나이가 아닌 탓에 여기 저기 농사 일을 벌려 놓으면,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동 거리가 먼 것은 둘째 치고, 트랙터를 비롯한 각종 농기계를 먼 곳까지 이동시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덕 수업을 받은 지 3개월여가 지난 2022년 9월 중순 어느 날, 더덕 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3년동안 키워온 더덕을 수확하는 것이다. 기계로 먼저 더덕을 캐낸 다음에, 사람들이 아직 땅속에 남아있는 더덕을 수확했다. 마지막으로는 멀칭 비닐을 벗기고, 밭에 남아있는 풀을 비롯한 쓰레기들을 깨끗하게 치웠다. 남의 밭을 임대했기 때문에, 깔끔하게 밭을 청소해주는 마무리 작업까지 해준 것이다.
그때 마침 나와 동료들이 더덕을 사려고, 더덕 밭에서 있는 사장님을 찾아갔다. 더덕 농사가 잘된 덕분에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사장님의 행복해하는 미소를 보면서, 농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2022년이후에 사장님의 웃는 얼굴을 삽교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삽교리에서 임대했던 밭들의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에 더덕의 주산지인 청일면에서 더덕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연이 있는 더덕 밭 사장님 덕분에, 나와 동료들은 싼 값에 더덕을 살 수 있었다. 더덕 고추장 무침 등 이런 저런 요리를 해보았는데, 그냥 껍질을 벗긴 생 더덕을 먹는 것이 제일 맛있었다. 그만큼 더덕이 잘 자라준 것이다. 더덕을 먹을 때면, 더덕 농사가 잘 되어서 기뻐하는 사장님의 환한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