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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삽교마켓의 후유증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여섯번째 글

by 유진

서울에 사는 아들 집에 다니러 갔던 최선생님 부부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곧바로 30대의 젊은 신반장 부부도 감기 몸살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카톡방에 올라왔다. 연이어 전장군님과 교장선생님의 형수님들, 그리고 장미씨도 몸이 아프단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동료들이 아프다는 소식은 더욱 민감하게 들려왔다. 결국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10명의 교육생들중에서, 아프지 않은 사람은 교장선생님, 전장군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뿐이었다.

‘중복잔치’와 ‘삽교마켓’이라는 큰 이벤트를 연달아 치르면서 대부분의 동료들이 나가 떨어졌다.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더 어려웠던 것은 때때로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등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었다. 동료들이 만난 지 겨우 3개월밖에 안되었기에, 팀웤이 단단해지기에는 시간적으로 짧았던 탓이었으리라. 더군다나 60대의 동료들과 여성들이 감당하기에는 그 준비과정이 너무 힘든 행사들이었다.


산채마을에서 마을 축제인 ‘삽교마켓’을 개최한 때는 2022년 7월말이었다. 이 축제는 중복잔치를 끝낸 지 4일만에 마련된 자리였다. 산채마을이 둔내면 삽교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삽교마켓’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삽교리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행사였기에, 횡성군의 다른 마을에서도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들은 목공예 체험, 천연 모기 퇴치제, 양말목 공예품 등 다양한 주제로 삽교마켓에 참여하여, 같이 행사를 축하해주었다.

우리들은 일주일 동안 두 개의 큰 이벤트를 준비해야 했다. 하나의 이벤트도 힘든데, 두 개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몇 주전부터 아침 일찍 모여서 작업을 했지만, 저녁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3일 전부터는 축제때 판매할 감자, 토마토, 꽈리고추를 비롯해서 다양한 농산물들을 수확했다.

감자전과 토마토 주스, 그리고 농산물들을 판매하는 것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생들의 담당이었다. 감자전과 토마토 주스는 현장에서 만들면서 판매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여자 동료들이 맡기로 했다. 사랑채 앞 마당에 커다란 천막을 설치하고, 수확한 농산물로 감자전과 토마토 주스를 만들었다. 손님들이 희망할 경우 직접 감자전 만드는 체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는 교장선생님과 함께 우리가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랑채 옆에 위치한 자그마한 오두막에 농산물 판매대를 설치하였다. 지난 며칠동안 수확한 감자, 고추, 토마토를 비롯해서, 양배추, 상추, 무우, 깻잎 등 재배하고 있던 다양한 농산물들을 판매하였다.

횡성 15주차 금요일_축제 준비_각종 가격 등으로 치장된 농산물 마켓_20220729_183348.jpg

드디어 축제날이 밝아왔다. 휴가철인데다가 인터넷을 통해 ‘삽교마켓’에 대한 홍보를 많이 했기 때문인지, 찾아온 손님들이 많았다. 그 당시에 유난히 비싸진 농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데 한 몫 한 것 같다. 휴가철이어서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온 부부 등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넓은 산채마을의 잔디마당에서 뛰어 놀면서, 우리가 준비한 다양한 체험행사를 즐겼다.

횡성 15주차 토요일_축제_목공 체험_20220730_1659183675626.jpg

손님이 많으면, 이것을 준비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할 일이 늘어난다. 동료들은 손님을 맞아들이는 데 정신이 없었다. 감자전과 막걸리, 그리고 토마토 주스를 판매하는 매대가 제일 붐볐다. 팔려고 준비한 재료들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 바람에, 다음 손님들을 위해서 감자를 갈아서 전을 부칠 준비를 하고, 토마토를 갈아서 주스 만들 준비도 해야 했다.

“자기가 전부 다 할 수 있다고 해놓고, 손님들이 한참 오는 시간에 가버리면 어떻게 하죠?”

여자 동료 한 명이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매대로 만들어 놓은 큰 천막 아래에는 그녀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좀전까지 같이 준비를 하던 여자 동료가 딸 부부의 전화를 받고 속초로 가버린 것이다. 빠져나간 여자 동료를 대신하여 신반장이 함께 하기로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최선생님까지 감자전 만드는 작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정신없이 감자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판매하는 동안, 판매대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횡성 15주차 금요일_축제 준비_감자전 판매 준비하는 여자동료들_20220729_183400.jpg


축제 둘째날 아침에 나와 교장선생님은 토마토를 수확할 시기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곧 손님이 올텐데 방울 토마토를 미리 따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전날과 같이 이튿날에도 방울 토마토를 사고자 하는 손님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에, 미리 수확을 해 놓은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손님들이 오면 그때 따서 주면 되죠.”

교장선생님은 방울토마토를 미리 수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전날 준비해 놓았던 방울 토마토가 첫째 날 거의 다 팔려 나가면서, 둘째날 아침 일찍 추가로 수확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펜션에 묵었던 손님이 갑자기 감자 100킬로그램을 주문하는 바람에, 교장선생님은 그것을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감자 포장 때문에 방울 토마토를 수확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약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토마토를 미리 수확해놓지 않으면, 손님이 주문하고도 수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손님이 한두명이 아닌 상황에서 요청할 때마다 판매대를 비워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손님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방울 토마토를 찾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당연히 미리 준비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토마토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거의 두시간 동안 방울 토마토와 완숙 토마토를 땄다. 내가 혼자서 토마토 수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동료들이 알텐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도 남을 도와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피로가 쌓여 있던 나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횡성 16주차 일요일_삽교 마켓 이틀차_한가족이 농산물 사러 출동_20220731_1659353897338.jpg


이틀에 걸친 삽교 마켓이 막을 내리고, 대표님과 동료들은 가볍게 막걸리 파티를 열었다. 모두들 피로에 젖어 있어서 그런지,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했다. 아니 축제기간동안 동료들 마음에 자리잡았던 다른 동료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기에, 빨리 헤어지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파티는 한 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축제의 후유증은 그 다음 주에도 이어졌다. 아픈 동료들이 많아서 교육을 이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나타났던 갈등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어려웠다. 축제 중간에 딸 집에 간다고 빠져나간 동료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오래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번의 큰 이벤트로 북적이던 산채마을에 찬바람만 감돌았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면 팀웤도 좋아지고 조직의 내성도 생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조직이든 감당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만난 지 얼마 안된 우리 공동체의 협력관계가 바닥을 드러낸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의 한계를 알게 됨으로써, 그 뒤부터 팀이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스케줄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량을 알게 된 것이 두 번의 이벤트에서 얻은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또 다른 갈등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얼마 뒤에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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