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다섯번째 글
“농촌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이 중요하더군요. 경쟁에서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는 회사 생활과는 많이 달랐어요.”
내가 강원도의 한 발표회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이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을 진행했던 강원도의 10여개 지역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22년 10월이었다. 각자가 경험한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횡성군 둔내면 산채마을의 교육과정에 대한 발표자로 나섰다.
교육 기간동안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이 바로 공동체의 중요성이었다. 농작물의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10명의 교육생이 공동으로 작업했기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농촌 생활이 무엇인 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웃간 교류라는 것이 거의 없는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우리들이 열었던 마을 잔치는 농촌 공동체의 의미를 생각나게 한 날이기도 했다. 2022년 7월 26일 중복날, 나와 동료들은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였다. 산채마을이 위치한 삽교 1리에는 110가구 정도가 사는데, 이날 80명이 넘는 마을 분들이 참여했다. 그렇게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 것은 참 드문 일이라고 다들 이야기했다.
산채마을의 여러 건물들 중에서 가장 큰 풀솜대에 식사 준비를 했다. 풀솜대 건물은 내부뿐 아니라 외부의 나무 데크 공간도 넓기 때문에, 대규모 이벤트를 진행할 때 유용하게 쓰였다. 중복 전날 동료들은 청소부터 시작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닦고 햇볕에 말렸다. 중복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남자동료들이 큰 화덕 두 개에 불을 피우고, 닭 80마리를 삶았다. 옆에서 여자동료들은 김치를 담고, 떡과 과일을 준비했다. 물론 맥주, 소주, 막걸리 등 주민들이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술도 마련하였다.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100여개의 의자와 테이블을 닦고 말리고 배치하는 일이며, 90인분의 김치를 만드는 일 등등…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에 작업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간단한 막걸리 파티 시간이 있어서, 더 좋았다.
중복 날 아침, 잔치 준비를 주도하고 있던 팀장님 주재로 미팅이 열렸다. 서로의 R&R을 명확히 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자리였다.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면서, 어떤 동료는 삶아진 삼계탕을 그릇에 담고, 다른 사람은 담근 김치를 그릇에 담았다. 나와 젊은 신반장은 손님들 테이블에 각종 술과 음료수, 그리고 김치와 떡 등을 가져다 놓는 일을 맡았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오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에, 10시 30분까지는 배치작업을 끝내야 했다. 가까스로 식사 준비를 마무리할 무렵, 노인회장님과 부녀회장님을 비롯한 마을의 리더들이 먼저 도착했다.
“뭐 거들 것 없나?”
뭔가 도와 주기 위해 일찍 온 것이다. 11시가 되면서 마을 분들이 한명 두명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중복잔치가 시작되었다. 삼계탕을 맛있게 먹은 후에도, 마을 주민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다. 많은 주민들이 온 탓에, 풀솜대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의 나무 데크까지 빈 자리가 없었다. 서로들 오랜만에 만난 듯, 이야기 꽃이 끊이질 않았다.
손님들이 삼계탕을 먹는 시간이, 나와 동료들에게는 오히려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별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동료들은 잠깐 풀솜대 밖의 나무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우리는 아침 8시부터 한시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있던 대표님이 웃으면서 몇몇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제일 앞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분이 유명 건설회사 사장님을 지내셨어요. 마을 모임에 오면, 꼭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곤 해서, 다른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했죠.”
“바깥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분은 마을 회관 옆집에서 살고 있어요. 이분은 걸핏하면 경찰서나 군청, 면사무소에 민원을 넣어서, 마을 사람들이 다 싫어하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있을 것 같으면, 바로 신고를 하는 거예요.”
“심지어 어떤 마을에서는 외부에서 이사온 주민들끼리 싸우는 통에 서로 말도 안하고 지내죠. 그 마을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겠죠.”
농촌에서는 이웃집의 수저가 몇 개인지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기피인물들에 대한 소문도 오르내렸다. 이것이 농촌의 공동체가 갖는 부정적인 측면중의 하나일 것이다.
밀접한 공동체일수록 서로의 희로애락을 잘 알게 되면서 이해의 폭이 커질 수 있다. 며칠동안 중복잔치를 같이 준비했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힘든 준비과정을 즐겁게 만들어갈 수 있었다. 잘 아는 사람들끼리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스스럼없이 도우며 살 수 있는 반면, 서로의 흠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서로의 삶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일반적인 도시 생활인 데 비해서, 농촌에서는 이웃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이사온 사람들 중에서는, 간혹 도시에서 가져왔던 자기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농촌에서는 도시에서 가졌던 부와 권력은 다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삶의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농촌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공동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
사람은 어디에 머물든,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이 모여서 삶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 스토리는 마을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동체라는 것이 강조되는 농촌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강원도 지역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 과정 발표회에서 내가 공유하였던 중요한 주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