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세번째 글
장마철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세찬 빗줄기가 며칠 채 이어졌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던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의 산채마을에도 장마비가 연일 쏟아졌다. 여기 저기에서 밭들이 쏟아지는 비를 있는 힘껏 받아내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비료가 듬뿍 포함된 빗물을 자기 몸에 충분히 흡수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땅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들에게 하늘이 주는 영양분을 실컷 먹이고 싶은 욕심이리라. 마치 농작물들이 자식이라도 되는 양. 비가 한껏 내린 다음 날에는 농작물들이 부쩍 성장해 있음이 느껴질 정도였다.
장마철이 길어지면서, 지나치게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밭을 둘러보는 농부들의 얼굴에서 주름살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빗물이 작물을 성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되면 화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 작물들이 물에 잠기게 되면 숨을 쉬지 못해서 죽게 된다. 더군다나 땅은 작물이 성장하는 영양분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세균들도 기생하고 있다. 비가 내리면 이 세균들이 튀어올라, 작물들에게 병을 가져다주곤 한다.
둔내면 삽교리의 마을도로와 하천은 마을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도로의 양쪽에는 자그마한 야산들이 도로와 평행하게 이어져 있고, 마을 길과 야산 사이에는 밭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밭들이 야산을 등지면서, 대부분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웬만큼 비가 와도 빗물이 잘 빠져나가는 구조이다.
하지만 2022년 여름에는 연일 장마비가 이어지면서, 농작물들이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텃밭에 심어 놓았던 토마토 열매의 가운데 부분이 움푹 패이면서 검은 띠가 나타났다. 넓적한 오이 잎이 누렇게 바래기 시작했다. 살충제와 살균제를 주기적으로 뿌렸지만, 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물들이 병에 걸려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김대표님이 농약분야 전문가인 둔내면의 식물병원 원장님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살충제의 병 뚜껑은 초록색, 살균제는 분홍색, 제초제는 빨강색, 영양제는 정해진 색깔이 없어요.”
농약에 대해 문외한인 우리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강의를 해주었다. 고추의 탄저병, 무나 배추의 진딧물과 벼룩벌레 등의 방제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그 외에도 농약 치는 횟수나 관리법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벌레나 세균에 의해 옮겨지는 병을 막기 위한 농약은 있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 병을 낫게 해주는 농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농작물에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하단다. 그 원인조차 파악되지 못한 바이러스들이 많아서, 방제하기 위한 농약을 개발할 수가 없다고 한다. 농부들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실내교육을 마치고 강의실 바로 옆에 위치한 텃밭에서, 우리가 심은 작물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농사를 지을 때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어떤 시점에 어떤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다. 인체에 해가 없을 정도의 양만을 사용해야만 하는 데, 그 조절도 어렵다. 병이 걸린 후보다는 예방 차원에서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에, 그 살포 시기나 양이 더욱 더 중요하다.
뿌리혹병에 걸려 죽어가는 배추, 붕소 결핍으로 중간에 검은 선이 만들어진 토마토, 노균병이 걸려서 노란 반점들이 번져가는 오이 잎 등등… 전문가의 눈에는 질병에 허덕이는 작물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는가 보다. 우리들의 250평 남짓한 자그마한 텃밭에서 이렇게 많은 병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대규모 경작지에서 더욱 많은 병해충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밭에 심어진 고추나무들은 모두 뽑아내야 해요.”
텃밭 제일 안쪽에 최선생님이 심은 100여그루의 고추가 있었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최선생님의 질문에 대해, 둔내 식물병원 원장님이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네? 모두요?”
최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몇 달 동안 잘 자란 고추나무를 굳이 뽑아낼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50평의 개인 텃밭에 100여그루의 고추들이 심어져 있었다. 장마철에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추 잎들이 오그라드는 증상이 나타났다.
“‘칼라병’이라고 하는 바이러스 병이에요. 확산속도가 빨라서, 보이는 대로 뽑아내 버려야 하거든요.”
이것을 몰랐던 최선생님은 전체 고추나무에 병이 확산되도록 놓아두었던 것이다.
교육을 받고 며칠이 지난 아침 최선생님 부부는 고추나무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노력해서 키워온 것이기에, 작업을 하고 있는 그들의 손이 무거워 보였다. 최선생님 텃밭은 야산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뽑아낸 고추나무를 야산에 멀찌감치 버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텃밭 바로 옆 야산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들은 고추나무가 있던 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왜 잡초들은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라는 지 의구심이 들었다. 비료도 안주고 농약도 뿌려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잡초들도 병에 걸린단다. 장마철과 같은 악조건에서는 그들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작물들에 비해서는 훨씬 잘 자라고 병에 강하다. 농작물들에 대한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농작물은 인간이 원하는 맛과 크기, 색깔 등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적인 재배환경에서 키워져 왔죠. 인간의 손에 의지해서 성장하는 농작물은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죠.”
들판에서 피어나는 잡초는 자연의 생태계에서 온갖 질병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스스로 진화해왔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따로 비료도 주지 않고 농약도 뿌려 주지 않기에,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다. 반대로 농작물은 인간이 주는 비료를 먹고, 농약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왔다.
이제 농작물은 인간의 보호없이는 자라기 어려워졌다. 맛있고 떼깔좋은 농작물을 선호하는 인간의 욕심이, 농작물의 생태계 적응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더군다나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자연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속에서는, 농작물의 적응력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농사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어느 날 우리들의 카톡방에 대표님이 남겨놓은 구절이 생각났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주는 것이고, 농부는 다만 정성으로 거드는 것이지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즐겨야 합니다.”
자연환경에 거슬리는 방법으로 농작물을 키울수록, 장마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농작물의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 자세뿐 아니라 자연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 방법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해서 인상깊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