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두번째 글
“이 교육시간을 잡기 위해 나와 통화한 사람이 누구죠? 그 사람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친환경 농법 교육을 시작하려던 박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물었다.
“아무 것도 맡고 있지 않는데요.”
교육장의 제일 앞에 앉아 있던 내가 대답하였다. 박선생님은 자택의 거실에 여러 개의 책상과 의자들을 놓고 교육장으로 쓰고 있었다.
“그럼 제가 아무 것도 담당하고 있지 않은 사람과 대화했던 건가요?”
강의 내용이 띄워진 TV 스크린 옆에 앉아 있던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뭔가 불만이 있는 듯했다. 문득 그와의 첫번째 통화가 떠올랐다.
“강사료를 얼마나 줄 건가요? 저는 한 시간에 20만원이상을 받고 있거든요.”
그는 일정 수준의 교육비를 받아야 시간을 내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요구에 당황하였다. 농촌의 전문가들이 농촌에 들어와 살고자 하는 귀농 귀촌인들에게 호의적이어서, 거의 무료로 교육을 해줄 것이라고 나의 기대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요구한 강사료도 많은 액수였다. 결국 첫 통화에서는 강사료 때문에 교육시간을 잡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대표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김대표님 본인도 한참 교육을 다닐 때는, 그 정도 금액의 강사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횡성군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을 1급, 2급 등으로 나누어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만큼 강사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강사들의 교육프로그램이 활발하다는 이야기이다. 박선생님은 1급 강사 중 한 명이었다.
2022년 6월초 어느 날이었다. 김대표님이 ‘농촌에서 살아보기’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 외부 전문가의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하였다. 10명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생들은 각기 귀농이나 귀촌 이후에 하고 싶은 일들이 달랐다. 단순하게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다는 귀촌 희망자부터, 농산물 가공이나 유통 등 농업 서비스 분야에 몸담고 싶다는 동료들까지 다양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은 주로 농산물 재배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교육이 필요했다. 니즈가 다양해서 희망하는 교육도 다양했다.
우리는 횡성군내의 외부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정식 교육과정에서 빠져 있는 부분을 교육받았다. 횡성군으로 이주해서 카페를 하면서, 농산물의 가공/판매를 하는 ‘윤토마 하우스’라는 곳에 가서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다. 또 어떤 날에는 횡성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그곳에 있는 가공시설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7월초에 교육받았던 박선생님의 친환경 농법 프로그램은, 내가 그와 접촉해서 진행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농업교육 포털(agriedu.net)의 온라인 교육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에는, 주로 농업교육 포털에 올라와 있는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공부를 했었다. 그 중 토마토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박선생님의 교육내용을 인상깊게 들었다. 수십년 동안 토마토를 재배하면서 경험이 풍부했을 뿐 아니라,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토마토를 재배하기로 결정한 터라, 박선생님의 교육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런 그가 횡성군 둔내면에서 가까운 안흥면에서 살고 있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던 참이었다. 이 교육시간을 잡기 위해서, 거의 한달동안 접촉했었다. 그런데 일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박선생님은 비닐하우스 3,600평, 노지 13,000평의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친환경 농약 제조공장과 다양한 농산물들의 가공공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연 십수억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한다. 특히 15년동안 친환경 토마토를 서울 현대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백화점의 까다로운 친환경 기준을 지키면서, 15년이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토마토가 전국에서 제일 비싼 값에 판매되는 것에 자부심이 컸다.
농사짓기 어렵다는 친환경 농법으로 십수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공한 만큼, 교육 의뢰가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횡성군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강의 요청이 들어온단다. 하지만 매일 토마토와 다양한 작물들을 관리하고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 가능할 때만 교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7월초 우리의 강의는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강의 시간이 총 3시간이나 되어서,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만 했던 동료들은 따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친환경 비료를 제조하는 법이나 토마토를 키울 때 친환경 농약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가 등의 내용이 나왔을 때는 무척 재미있었다. 토마토 재배를 하기로 결정한 나에게는 꼭 필요한 내용이어서 흥미로웠다. 박선생님의 전문성도 느껴졌다.
3시간동안 실내수업을 진행한 다음, 그의 토마토 비닐하우스에 견학을 갔다. 비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해서 여러 명이 토마토 출하를 하고 있었다. 현대백화점 트럭이 출하장 앞에 주차하고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포장작업과 태그 붙이는 작업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바로 옆의 토마토 비닐하우스로 갔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2줄 심기로 이랑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봐왔던 농가와 다른 점이었다. 2줄심기는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토마토를 심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고랑이 넓어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고랑에는 부직포를 깔아 놓아서, 풀 한 포기 없이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토마토 줄기가 끝도 없이 뻗어 있어, 마치 토마토 정글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토마토도 많이 달려 있었다. 설명하고 있는 박선생님의 얼굴에서 전문가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도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전문가.
친환경 토마토 농법 이외에도 6개월동안 이런 저런 외부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 농촌에 살고 있는 전문가들이, 교육을 중요한 비즈니스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사만 지어서는 소득을 올리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농산물 가공이나 유통사업을 하는 농민들도 많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활용해서 교육사업을 진행하여, 추가로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겨울철 농한기에는 농산물 재배가 어렵기 어렵기 때문에, 진행이 용이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농업이라는 산업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 산업에 비해서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부가가치가 높은 교육 서비스로 손을 뻗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노하우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박선생님이 정당한 강사료를 요구했는 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