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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세대차이와 농촌문화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네번째 글

by 유진

‘영농정착 지원사업의 지원인원을 2025년까지 2만 3천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 청년들에 대한 지원도 한층 강화하여, ‘25년에는 ‘23년대비 지원인원이 1만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9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이다. 우리나라 인구 감소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농촌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이슈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청년들의 귀농 지원정책이 강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농촌에서 청년들을 발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문득 정부의 귀농정책이 미래 농촌의 인구 구성이나 노동력 구성비율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 지 궁금해졌다. 청장년과 노인, 그리고 외국인 인구 비율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느냐가 농촌의 문화나 삶의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에서 세대차이를 경험했던 것이 생각나게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요즘 꽈리고추를 딸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솟아나요~ 처음에는 자주 따야 해서 귀찮기만 하더니.”

“이것이 우리의 효자 종목인데, 감사해야죠!”

최선생님과 전장군님 형수님들이 고추를 수확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꽈리고추는 주 2~3회 수확을 해야 하고, 한번 수확할 때마다 동료 10명이서 3~4시간 정도를 작업해야 했다. 4킬로그램짜리 종이박스 30개 전후를 수확해야 했으니까, 그만큼 고된 작업이었다.

4킬로그램 한 박스에 1만 5천원 전후에서 형성되던 경매가격이, 어느 날인가는 6만 천원까지 치솟았다. 30박스를 수확하면, 최고 180만원까지도 매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힘들게만 느껴지던 고추 수확이 즐거운 일로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료들의 발걸음이 저절로 고추 밭으로 향하곤 했다.

“오늘은 11시까지만 따고 내려가시죠.”

동료들이 한참 고추 수확을 하고 있는데, 30대인 젊은 신반장이 소리쳤다. 9시쯤부터 따기 시작했으니까, 11시는 고사하고 12시가 되어도 다 따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런데도 신반장은 11시에 작업을 끝내자고 한다.

비오기 직전 꽈리고추 수확하는 동료들.jpg

2022년 8월초 어느 날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동료들은 고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하필 꽈리고추가 왕성하게 자라는 7, 8월달은 장마철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꽈리고추를 따기 힘들다. 옷이 비에 젖을 뿐 아니라, 땅도 질어서 엉덩이 방석에 앉아서 작업하더라도 옷이 금방 더럽혀지곤 했다. 비가 묻어 있는 고추들을 모두 말려서 출하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생긴다. 그럼에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동료들은 열심히 고추 수확을 하고 있었다.

“11시면 너무 짧지 않아? 너무 커버린 고추들은 맛이 없으니까, 가능하면 더 크기 전에 다 따내야 하지 않을까?”

옆에서 60대인 최선생님이 작업시간을 늘리더라도 다 따고 가자고 제안을 했다. 경매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어서, 가능하면 많이 수확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자 신반장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수확을 즐기면서 할 것인가? 힘들지만 수확을 많이 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하하”

젊은 신반장다운 이의 제기였다. 그는 굳이 궂은 날씨에 고생하면서 고추 수확을 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즐겁게 사는 삶이 행복한 것이기에, 농사도 즐겁게 해야 지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나이든 농사꾼들이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이다. 각종 농작물을 제때 수확하는 것이 농사꾼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거면, 왜 농사를 짓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우리는 그날 11시 30분경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미처 따 내지 못한 고추들이 있었지만, 다시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더 이상 작업하기 힘들었다. 그 며칠 뒤에도 세대차이를 느끼게 하는 일이 또 발생했다. 그 날도 아침 7시부터 꽈리고추 수확을 하기로 했다. 때마침 잠잠하던 하늘이 심술을 부리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꽈리고추를 딸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5분 대기 조가 되기로 했다. 나도 할 수 없이 집으로 되돌아와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오전 10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신반장이 오후 5시에 횡성읍에서 하는 연극을 보러 가자고 카톡방에 올렸다. 집에서 다른 일도 못하고 기다리던 나는 좀 황당했다. 비가 그치면 고추를 수확하자고 해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극이라니. 마침 이날 연극은 연극배우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려서 공연 자체가 취소되어 버렸다.

다 자란 농작물은 어떻게든 수확을 해야 한다는 최선생님의 생각에 따르게 되면, 애초 연극을 볼 생각을 하면 안되었다. 빗줄기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고추 수확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즐기면서 농사일을 하자는 젊은 신반장의 의견대로라면, 비가 언제 그칠 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굳이 고추 수확에 목 매일 필요가 없었다. 그것보다는 연극 관람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다.


‘사람을 위한 농사인가? 농작물을 위한 농사인가?’

정부 정책대로 향후에 청년들이 농촌의 주역이 되게 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관이 농촌 사회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소위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중요한 기조로 자리잡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농민이 되기보다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농사를 지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과 같이 농작물에 정성을 쏟는 대신, 자신의 삶에 정성을 쏟는 농부가 될 것이다.

사실 나도 똑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남은 인생에서 농사를 짓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쏟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행복한 수준으로 농사짓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비록 나는 청년은 아니지만, 워라밸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귀농 귀촌인들이 늘어나면서, 농촌 문화가 이미 변화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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