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일곱번째 글
8월초 그날은 아침부터 징조가 심상치 않았다. 옥수수를 수확하기로 한 날이었다. 동료들이 모인 아침 6시에는, 보슬비가 내리다가 잠깐 그친 상황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몇몇 동료들은 비가 또 올 것 같으니까, 나중에 비가 완전히 그친 뒤에 옥수수를 따자고 했다. 반면 다른 동료들은 비가 많이 오지 않으니까, 그냥 수확을 진행하자고 했다. 우리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김대표님이 트랙터를 몰고 옥수수 밭으로 출발해버렸다. 비도 얼마 내리지 않는데, 나중에 수확하자고 하는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우리들도 할 수 없이 옥수수 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옥수수를 따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자, 여자동료들을 포함한 일부 동료들이 비를 피해서 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것을 본 대표님이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누구는 옥수수를 따고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차안에 들어가 있죠?”
동료들은 비를 맞으면서 옥수수를 딸 수밖에 없었다. 옥수수를 수확하는 내내 보슬비가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1천평의 밭에 ‘미백 찰옥수수(이하 ‘미백’)와 ‘대학 찰옥수수(이하 ‘대학’)’, 두 종류를 심었다. 미백은 저온에 강해서 강원도에서 주로 재배하는 반면, 대학은 충북 괴산에서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저온에 약한 품종이었다. 적정 기온에 맞춰서 재배하기 위해서, 대학을 미백보다 늦게 심었다. 그만큼 미백이 대학보다 먼저 익었고, 그날은 미백을 수확하는 날이었다.
두 종류의 옥수수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바로 옆 이랑에 붙여서 재배하였다. 모양새가 비슷해서, 서로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몇몇 동료가 미백 바로 옆 고랑에 심어진 대학을 일부 따버렸다. 아직 익지도 않은 대학이었지만, 옥수수를 처음 수확해보는 동료들은 그것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몰랐다. 옥수수 수염이 검게 변한 것이 익은 것인데.
“아니, 이렇게 익지도 않은 옥수수를 따내 버리면 어떻게 해요? 안 익은 옥수수는 먹지도 못하니까, 밭 한쪽에 버리세요.”
대표님이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냈다. 수확을 하기 전에 대표님이 몇몇 동료들에게 미백과 대학이 심어진 경계 부분을 알려주면서, 그날 수확해야 할 범위임을 주지시켰었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듣지 못했던 다른 동료들이 그만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날 200여개의 대학 찰옥수수를 버려야만 했다. 우리의 실수로 인해서, 대표님이 두 번째로 화를 냈다.
평상시 잘 화를 내지 않는 대표님이기에, 하루에 두번이나 화를 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비를 맞으면서 작업을 진행했던 동료들은 대표님의 질책에 더 힘들어했다. 그 전주(前週)에 두 번의 큰 이벤트를 치룬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했다. 수확해온 옥수수를 산채마을 입구의 정자에 풀어놓고, 박스에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작업 내내 동료들은 말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날 오후에는 그 동안 미뤄뒀던 꽈리고추도 따야 했다. 동료들의 얼굴에는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힘들게 했던 첫 옥수수 수확의 여파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나타났다. ‘농촌에서 살아보기’에 참여한 10명의 교육생들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두 분이 심각하게 다투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지난 주말에 놀러온 딸 부부에게 수확한 옥수수를 싸주고 싶었는데, 하나도 없다고 해서 놀랐네요.”
“지인들에게 열심히 판매를 하다 보니까, 우리가 수확한 옥수수가 부족할 정도로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요.”
최선생님과 교장선생님간의 대화 내용이었다. 첫 수확을 한 날, 교장선생님이 예약 판매한 지인들에게 대부분의 옥수수를 보냈다. 남아있던 약간의 옥수수도 곧바로 교장선생님의 지인들 차지가 되어 버렸다. 정작 같이 재배한 다른 동료들에게는 나눠 주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최선생님이 점잖게 말을 시작했지만, 얼굴은 이미 빨개져 가고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최선생님의 아들과 딸 부부가 가끔 산채마을에 놀러 오곤 했다. 지난 주말에도 딸 내외가 하루 지내고 간 모양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딸 부부에게 최근에 수확한 옥수수를 챙겨 주고 싶었는데, 빈손으로 보낸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반면 교장선생님은 동료들간에 합의된 규칙에 따라서 지인판매를 한 것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몇 달 전에 곰취와 곤드레를 지인 판매를 했을 때와 같이, 판매수량에 제한이 없었다. 팔 수 있는 동료는 원하는 만큼 판매를 했었다. 교장선생님은 지인들로부터 유독 많은 수천개의 옥수수 주문을 받았다. 심지어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서, 교장선생님 부부가 따로 옥수수 수확을 진행해야 했을 정도였다.
“정작 옥수수를 키우느라고 고생한 우리들은 제대로 맛도 보지 못한 상황이잖아요! 적어도 우리들끼리는 필요한 수량을 분배한 다음에 외부에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럼 미리 말을 해줬어야죠! 기존에 있던 규칙대로 판매를 했는데, 뭐가 문제인가요?”두 사람간의 말싸움은 몸싸움 일보 직전까지 가고 말았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두차례나 야단을 맞아가면서 옥수수 수확을 해야만 했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기어이 옥수수의 분배 단계에까지 화(禍)를 부른 것이다.
동료들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시점에, 나는 가족들과 같이 ‘비상선언’이라는 영화를 관람했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만큼 영화의 내용에 몰입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바이러스 테러가 발생하자, 비행기 기장과 부기장은 비상선언을 하게 된다. 비상선언을 하게 되면, 각국 정부나 관련 단체들이 최우선적으로 비행기의 안전한 착륙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지상에서는 비행기 착륙 반대 시위가 벌어진다.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살고자 몸부림치던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처음에 지상의 반대시위에 어이없어 했다. 하지만 차츰 비행기 안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착륙이 자칫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를 착륙시키지 않기로 결정한다.
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간의 갈등이 투영되면서, 이 영화의 내용이 가슴깊게 다가왔다. 바이러스의 강한 전염성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키려던 사람들과,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간의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적인 모습들. 결국 착륙하지 않기로 한 비행기 안의 사람들간의 의사 결정 과정과 희생정신.
옥수수 수확이후에 벌어진 동료들간의 갈등 상황에서도 비슷한 모습들이 연출되었다.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것이 결국 싸움으로 이어졌다. 동료들이 첫 수확한 옥수수의 맛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두 지인들에게 팔아버린 교장선생님. 비록 교장선생님이 지인 판매의 규칙대로 했지만, 딸에게 옥수수를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최선생님.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충분히 싸움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동료들은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생활공간에서 살아왔다. 그만큼 자기 중심적인 삶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의 탑승객들과 같이, 우리 동료들도 협력과 배려를 통한 희생정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농촌에서의 공동체 생활의 근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