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아홉번째 글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서 나와 동료들은 7백평의 밭에 감자를 심었다. 그만큼 수확할 양이 많았다. 2022년 8월말, 우리들은 새벽같이 감자 밭으로 향했다. 뜨거운 여름의 한 중앙을 지나가고 있어서,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전에는 일을 할만한 기온이었지만, 오후에는 4시이후에나 밭에 나갈 수 있었다. 그날도 오전에 가능한 양의 감자만 수확할 요량이었다.
감자 밭은 마을 길에서 꾸불꾸불한 산길을 50미터 정도 올라가면 나왔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밭이라서 그런지, 아침 햇살인데도 벌써 따갑게 느껴졌다. 남자동료들이 먼저 감자 밭의 멀칭 비닐들을 벗겨냈다. 곧이어 대표님이 감자캐는 도구가 달린 트랙터로 감자 밭의 이랑을 따라 훑고 지나갔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동안 땅속에 숨어있던 감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료들이 엉덩이 방석을 깔고 앉아서, 감자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는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한참 감자 수확을 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상시에도 감자 밭 주변에 사는 개들의 짓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무심코 듣고 있는데, 다른 때와는 다르게 개가 멈추지 않고 계속 짖어댔다. 그러더니 처음 들어보는 짐승의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개 짓는 소리가 더 커지자, 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도 덩달아 올라갔다. 이상한 생각이 든 신반장이 소리나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노루가 그물망에 걸렸어요!”
신반장의 외치는 소리를 들은 동료들은, 작업을 멈추고 소리나는 쪽으로 가까이 가보았다. 그 곳에는 노루가 그물망에 걸려 있었고, 옆에서 산채마을의 초코가 짖어대고 있었다. 노루가 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노루 뿔이 걸려 있었다. 빠져나오려 할수록 오히려 노루망에 더 엉키고 말았다.
날뛰는 노루를 보면서, 대표님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짐승들을 잡았을 때 처리하는 정부의 행정 지침을 알려주었다.
“원래 노루는 고라니, 멧돼지와 다르게 잡으면 안되게 되어 있어요. 모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노루는 고라니와 멧돼지에 비해서 번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고라니는 한번에 6~7마리까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반면, 노루는 한번에 2마리밖에 낳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노루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고라니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란다. 더군다나 전세계 고라니의 90% 정도가 한국에 살고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은 실정이다. 고라니는 사냥도 가능하기에, 귀를 떼서 군청에 가져다주면 4만원을 준다고도 했다.
감자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내내, 초코와 노루의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날뛰고 있는 노루 곁으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지칠 때까지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초코의 짖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짖어대서 힘든가 보다. 그러자 노루의 울음소리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초코를 위협하기도 하는 듯한 소리를 냈었다. 나중에는 하늘을 향해서 고개를 들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점차 그 소리도 작아져 갔지만.
9월 중순에 2차로 감자 수확을 하였다. 너무 습해서 감자를 캐내기 어려운 곳을 포함해서, 절반정도의 감자 밭에서 작업을 했다. 습한 곳은 어느 정도 밭이 말라야 감자를 캘 수 있었다. 습한 곳은 트랙터가 작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밭이 많이 마르지 않았다. 습한 땅에 심어진 감자는 썩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수확을 하기로 했다. 트랙터 작업이 어려워서, 수작업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뻘밭에 가까워서, 남자동료들이 멀칭 비닐을 벗겨내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그 곳에 여자동료들이 들어가서, 감자를 캐내기 시작했다. 남자동료들이 다른 곳의 멀칭 비닐을 벗기고 나서, 그곳에서 수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여자동료들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와서 좀 도와줘요! 진흙이라서 너무 힘들어요!”
진흙 밭에서 감자를 캐본 적이 없는 남자동료들은, 여자동료들이 왜 자꾸 도와달라고 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보니까 여자동료들의 장화는 물론이고 옷도 흙투성이였다. 하얗게 썩어버린 감자들이 많아서, 냄새마저도 고약하게 났다. 엉거주춤하게 쭈그린 자세로 앉아서 일하고 있던 장미씨가 코를 막고 일어났다.
“발이 빠져서 일하기도 힘든데, 냄새까지 나서 도저히 못하겠어요~”
내가 들어가서 일을 해보니까, 과연 힘들고 냄새도 많이 났다. 힘든 반면, 좋은 감자를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도 잘 자라준 감자를 몇 개라도 찾아내기 위해서, 동료들은 진흙을 헤집고 다녔다.
동료들이 근처의 다른 감자 밭으로 옮겨가서 수확하는 사이에, 나는 진흙 밭 바로 옆에 방치되어 있던 멀칭 비닐들을 트럭으로 옮겨 싣기 시작했다. 몇 주전에 1차 감자 수확을 하면서 벗겨낸 비닐들이었다. 그날은 마지막으로 감자수확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감자 밭을 깨끗하게 치워 놓아야 했다. 누군가는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가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아서, 혼자서 30분 정도 작업하면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쌓아 놓았던 비닐들이 너무 많았다. 7백평의 밭에서 걷어낸 비닐들이기 때문이다. 거의 한 시간동안 트럭에 옮겨 실어야만 했다. 그 동안 비가 여러 차례 와서, 비닐사이에는 흙도 많이 묻고 온갖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냄새도 심하게 났다. 자연스럽게 내가 입고 있던 옷들도 더러워졌다.
멀칭 비닐은 긴 고랑을 덮었던 것이라서, 상당히 길었다. 옮기는 동안 돌돌 말아놓았던 비닐들이 풀려서, 땅바닥에 질질 끌면서 옮겨야만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동료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더러운 비닐을 끌고 가는 내 모습이, 마치 쓰레기를 모으는 넝마주이 같다는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동료들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댔다. 거의 넝마주이가 다된 내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이 잠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고된 수확작업에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웃고 있는 사이에 최선생님 형수님이 만들어온 호박죽과 김치전을 테이블에 늘어 놓았다. 매번 새참을 준비해오는 최선생님 형수님과 전장군님 형수님, 그리고 여자동료들에게 고마웠다. 맛있는 호박죽과 김치전을 먹으면서, 동료들은 작업의 피로를 풀어냈다.
6개월동안 감자를 정식하고 정성스럽게 재배해서, 많은 감자를 수확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고생해왔던 것에 대한 결실을 맺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확하는 일이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더군다나 1차 수확할 때는 노루가 잡히는 희귀한 장면을 볼 수 있었고, 2차 수확할 때는 넝마주의로 변한 나의 모습으로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서 만들어진 추억의 한 페이지가 채워진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