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마흔번째 글
풀솜대 지붕 위로 큰 소나무가 쓰러졌다. 풀솜대는 산채마을 건물 중 가장 커서, 주로 마을 잔치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사용되곤 했다. 풀솜대를 포함한 산채마을의 모든 건물들은 대표님이 관리하고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이 대표님을 도와 주기로 하고 팔을 걷어 부쳤다.
소나무는 태풍 힌남노의 세찬 비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그대로 놓아두면 풀솜대 지붕이 파손될 수 있었다. 한번에 지붕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큰 나무였다. 전동 톱으로 잘게 토막내서 치우는 방법을 택했다. 전동 톱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내가 소나무 자르는 역할을 맡았고, 신반장은 옆에서 내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와 신반장은 대표님이 운전하는 트랙터의 바스켓(basket)을 이용해서 지붕으로 올라갔다.
맨 윗부분부터 가지를 하나씩 잘라 나갔는데, 잘린 가지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소나무가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작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칫 소나무가 땅으로 미끌어지게 되면, 신반장과 나도 같이 땅에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1시간 정도 작업을 진행하고서야, 제거작업이 완료되었다.
소나무 제거 작업이 끝난 뒤, 전장군님과 최선생님이 지붕 가장자리에 설치되어 있는 빗물 받이를 청소하기로 했다. 빗물 받이에 쌓여 있는 나뭇잎과 쓰레기를 제거해주지 않으면, 빗물이 건물 안쪽으로 스며들거나 이들의 무게 때문에 빗물 받이가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이번에도 대표님이 트랙터의 바스켓을 이용해서, 두 사람을 풀솜대 지붕의 빗물 받이 높이까지 올려 주었다. 전장군님이 모종삽을 이용해서 빗물 받이 안에 쌓인 나뭇잎과 쓰레기들을 퍼냈다. 풀솜대 지붕이 넓은 만큼 빗물 받이도 길었다. 전장군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대표님이 트랙터를 이동시켜야 했다.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일손을 멈추고 바스켓에 앉아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트랙터는 움직일 때마다 많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업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전장군님은 손이 닿는 한 멀리 있는 빗물 받이도 청소하였다. 그럴 때면 자칫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기 쉬웠다. 뒤에서 지켜보던 최선생님이 갑자기 뒤에서 전장군님을 껴안았다. 땅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서, 보호하기 위한 자세였다. 동료들 사이에 유명해진 백허그 장면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시간여에 걸쳐서 소나무 제거작업과 빗물 받이 청소까지 마무리되자, 대표님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날 저녁 전장군님의 깜짝 생일 파티가 열렸다. 장미씨와 팀장님이 카페에 생일 잔칫상을 준비하고 불을 끈 뒤, 전장군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카페에 들어선 전장군님을 향해 동료들은 폭죽을 터트렸다. 그런 다음 케익에 꽂혀 있던 초에 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 중 처음으로 벌어진 생일 잔치였다. 그 동안 생일을 맞은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동료들은 생일 케익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다. 며칠 전 힌남노 때문에 근처 마을에서 산사태로 집이 매몰되어서,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었다. 자연재해가 거의 없던 횡성군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덕분에 동료들이 여기 저기서 안부전화를 받은 일이 화제에 올랐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 옥수수 수확한 일 등 최근에 진행했던 작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료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던 자리였다.
불과 며칠전에는 옥수수 배분 문제로, 동료들 간에 갈등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오해 때문이든 각자의 이기주의적인 생각 때문이든, 갈등이 생기면 서로를 품어주고자 하는 생각의 공간이 좁아진다. 그 날 풀솜대 지붕의 소나무를 같이 제거하고 전장군님의 생일잔치를 열어주면서, 동료들간에 따뜻한 감정의 공간이 다시 넓어진 느낌이었다. 남을 도와주거나 베풀어주려면, 내 안에 상대방을 생각하는 공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편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 전장군님의 안전을 위해서 최선생님이 백허그를 했던 것처럼.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순간, 신반장이 카톡방에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최선생님과 전장군님이 풀솜대의 빗물 받이를 청소하는 사진으로 브로맨스 동영상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백허그를 하고 있는 장면에다가, 사랑을 주제로 하는 배경 음악까지 넣은 멋진 동영상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카톡방에서 다시 한번 즐거운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 장면을 처음 본 여자동료들은 모두들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예요? 언제 이런 일이 있었어요? ㅎㅎㅎ]
[언제부터 최선생님과 전장군님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ㅋㅋㅋ]
잠이 들면서까지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은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