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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종석이의 실내포차 '아지트'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마흔 두번째 글

by 유진

종석이가 ‘아지트’라는 실내 포차를 개업한 것은, 2022년 추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였다. 나는 추석 연휴가 지난 뒤에 ‘아지트’에 가보았다. 이 가게는 횡성군 둔내면의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었다. 10평도 되지 않는 작은 식당이었다. 시멘트가 노출된 천장에는 각종 배관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모두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반면 사방의 벽들은 하얀 색이었다. 검은 색과 하얀 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세련되어 보였다. 실내에는 4인용 테이블이 10개 정도 놓여 있었다.

종석이 아내가 성남의 한 실내 포차에서 3개월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각종 메뉴를 요리하는 법부터 가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배워왔다고 한다. 종석이는 20년이 넘게 둔내면에 있는 ‘웰리힐리’라는 곳에서 요리사로 근무하였다. ‘웰리힐리’에는 스키장, 골프장, 물놀이장 등 다양한 놀이시설들이 있어서, 연중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만큼 많은 손님을 상대로 요리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아내가 실내 포차를 연다고 하니까, 종석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주방을 맡게 되었단다.

내가 '아지트'를 처음 방문한 날에,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동료들과 회식을 하였다. 개업한 종석이를 위해서, 내가 이들을 초청하였다. 그의 가게 매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나와 동료들이 ‘아지트’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쯤 되었다. 이곳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춘 것이다.

아지트 간판 사진_20250317.jpg

두 사람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지만, 웃음이 가득했다. 추석연휴에 손님이 너무 많아 힘들었지만, 개업하자 마자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릴 수 있어서 기분 좋았던 것이다. 둔내면의 신시가지라고 불리는 곳에 가게가 있어서 그런지, 다른 식당에 비해서 20~30대의 젊은 손님들이 많았다. 이 집의 메뉴들도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들이었다. 조개버터 술찜, 매콤 뚝배기 파스타 등등…

종석이가 추천해주는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다. 오징어 김치전, 차돌 짬뽕탕, 닭볶음탕 등등… 맛있는 메뉴들이어서 그런지, 평상시 조용했던 전장군님이 분위기를 즐겁게 이끌어 갔다. 나와 러브 샷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우리의 회식은 10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술이 취한 전장군님은 2차로 근처의 다른 맥주 집으로 가자고 떼를 썼지만, 동료들은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나는 술 약속이 있으면, 거의 종석이네 가게에서 만났다. 익숙하고 편안한 술집을 좋아하는 나는, 이전에도 단골가게를 정해 놓고 이용하는 스타일이었다. 이제 종석이의 실내 포차가 단골집이 된 것이다.


내가 처음 귀농/귀촌 지역을 고민했을 때는 홍천군이나 평창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경치가 빼어난 곳이면서도 귀농/귀촌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에 있는 한옥학교 중에서 평창 한옥학교를 선택한 것도, 평창에서 미리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보다 열 살 아래인 종석이를 처음 만난 것은 이곳 평창 한옥학교였다. 같이 6개월동안 수업을 받았던 동기였다. 종석이는 횡성군 둔내면이 고향이었는데, 그곳에서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다.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횡성군을 알게 되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횡성군이 나의 귀농/귀촌의 후보 지역이 아니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횡성군에 있는 여러 면소재지들 중에서도 둔내면은 해발이 5백미터 내외인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홍천군이나 평창군 못지 않게 높은 지대여서, 공기가 맑고 파리나 모기 같은 벌레들이 적은 곳이었다. 하지만 홍천군이나 평창군에 있는 산들과 다르게, 횡성군의 산들은 나즈막한 높이였다. 그 모습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결국 나의 귀농/귀촌 최종 목적지는 횡성군 둔내면이 되었다. 종석이 덕분에 제 2의 삶을 살 터전을 횡성군 둔내면으로 정한 것이다.


개업한 지 2년여가 지난 2024년 겨울 어느 날, 오랜만에 종석이 얼굴을 보고 싶어서 아지트를 찾았다. 나는 농한기인 겨울에 주로 서울에 머물렀기에, 아지트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요리를 하는 종석이는 주로 주방에 있었다. 그러다가 손님들의 주문이 뜸해질 때면, 내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소주를 기울였다.

“형님, 이 식당을 내놓을까 해요. 업종을 바꿔 보려구요.”

술을 파는 곳이다 보니까, 새벽까지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 오후 5시에 문을 열어서, 새벽 1시나 2시까지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까 종석이와 그의 아내는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졌다.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밤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식당을 하고 싶어 했다. 마침 종석이의 고향집이 있는 웰리힐리 근처에 식당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주고 있었는데, 그곳을 리모델링해서 식당을 오픈할 생각이었다. 임대료를 아낄 수 있는 선택이었다.

둔내면의 식당이나 술집, 당구장 등 손님을 상대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시기별 영업 사이클이 있다고 한다. ‘웰리힐리’의 스키장과 골프장, 그리고 물놀이장에 사람들이 몰릴 시기에는 그나마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다. 주로 스키장이 개장하는 12월 중순부터 3월 중순, 골프장에 손님이 많은 봄이나 가을철, 그리고 한 여름 휴가철이다. 그리고 명절이나 연휴때도 제법 붐빈다. 반면 농번기인 5~6월달에는 발길이 뜸해진다. 한겨울에 접어들기 전인 11~12월에도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에게 어려운 점은 손님이 많을 때와 적을 때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이것 마저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 평균적으로 많이 줄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기사가 가끔 언론에 올라온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 감소지역에서는 더 심각한 실정이었다. 이곳 횡성군 둔내면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석이의 가게도 그만큼 부침을 겪고 있는 것이다. '아지트'를 운영하는 종석이 부부를 2~3년간 지켜보면서, 자영업자들의 business cycle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힘들지만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지도 보았다. 일한 만큼 충분히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의 내수가 살아나서 종석이와 같은 자영업자들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기를 기원해본다.


“형님, 우리 가게에서 일할 생각 없어요? 형님이 오실 때마다 손님이 많아서, 행운의 마스코트 같거든요. ㅎㅎㅎ”

'아지트'를 찾은 어느 날, 종석이가 농담을 하면서 나를 맞아 주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후 6시가 되면서 여러 그룹의 손님들이 들이 닥쳤다. 그들이 앉을 자리가 부족해지자, 나는 앉아있던 식탁을 내주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전에도 혼자서 종석이 가게를 찾을 때면, 주방의 한 켠에 의자를 놓고 종석이와 소주를 마시곤 했었다. 손님들이 갑자기 몰려오면서, 종석이도 주문한 메뉴를 요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일 이렇게 바쁘면 좋겠구나. ㅎㅎㅎ”

그날은 종석이와 기분좋은 농담을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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