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마흔 한번째 글
동료들과 함께 닭장을 만들고 나서, 최선생님이 장터에서 닭 36마리를 사다 놓았다. 푸른색 알을 낳는 청계, 하얀 오골계와 검은 오골계를 포함해서 토종 닭까지 다양한 품종들이었다. 이중 수탉은 7마리에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암탉이었다. 매일 수십 개의 계란을 먹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어느 정도 자란 중닭들을 사왔다.
닭을 키우자는 아이디어를 최선생님이 냈고, 마침 그의 숙소가 닭장에서 가까웠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닭 부장님’이라고 부르면서, 닭을 키우는 책임을 맡게 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닭들이 계란 낳을 생각을 안했다. 닭을 사다 놓은 것이 2022년 5월초였는데, 8월 중순에서야 겨우 하루에 달걀 몇 개씩만 맛볼 수 있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닭을 잡아먹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6개월 과정이 불과 2개월도 남지 않은 8월부터는 닭을 빨리 잡아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매일같이 나왔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이 끝나게 되면, 닭을 키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0월에 농작물 수확을 끝으로, 우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동료들의 의견은 번번히 ‘닭 부장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아직 잡아먹을 만큼 충분히 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9월초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며칠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농촌은 쉬는 날이다. 농부들이 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농사 일 대신 그 동안 키워온 닭들 중에서 제법 자란 아홉 마리를 잡기로 했다. 어차피 쉬는 날이기 때문에 회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 동안 닭을 잡아먹자는 의견에 반대를 해오던 ‘닭 부장님’이 드디어 동의를 하였다.
남자동료들이 닭을 잡아서 털을 벗기고 내장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기로 했고, 여자동료들은 준비된 닭을 삶아 내기로 했다. 최선생님을 제외한 남자동료들은 닭을 잡아본 경험이 없어서, 최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닭을 잡기 시작했다. 나와 전장군님이 닭장 안에서 닭을 잡기로 했다. 나는 이리 저리 도망가는 닭을 쫓아가기만 할 뿐, 어떻게 잡아야 하는 지 몰랐다. 결국 동료 두세 명과 같이 닭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서, 닭의 날개 죽지를 잡아챘다. 닭 날개의 단단한 뼈와 근육의 힘이 느껴졌다. 날개 죽지를 잡힌 닭은 더 이상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
잡은 닭을 최선생님과 교장선생님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면 두 사람이 닭을 기절시킨 후 죽였다. 젊은 신반장은 닭을 고통 없이 죽이기는 커녕, 죽이는 광경을 지켜보기도 어려워했다. 다들 처음 하는 일이라서 서툴렀다.
닭 털을 부드럽게 뽑기 위해서, 닭 몸통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남자동료들은 비를 피해서 사랑채의 처마 밑에서 닭 털 뽑는 작업을 했다. 알몸이 된 닭을 들고, 산채마을 바로 앞 냇가로 가서 내장을 빼내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냇물이 1급수여서 깨끗했고, 장화신고 작업하기에 알맞은 깊이로 물이 흘렀다. 최선생님이 내장을 떼어내면, 내가 받아서 여전히 붙어있는 작은 내장 쪼가리들과 피를 깨끗이 씻어냈다. 말끔해진 닭을 신반장에게 주면, 다리를 잘라서 몸통과 다리를 따로 담았다. 그래야 나중에 먹기 좋기 때문이다.
깨끗해진 닭을 펄펄 끓는 물에 넣었다. 미리 엄나무를 넣고 물을 끓여 놓았다. 엄나무가 간 기능 개선이나 관절 강화 효과 등 여러 가지 좋은 효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닭 냄새를 제거해줘서 좋았다. 1시간 이상 닭이 삶아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우리들은 화로 옆에서 막걸리를 한잔씩 기울였다. 쏟아지는 비가 지붕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 사이로, ‘보글 보글’ 물 끓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빗 소리와 물끓는 소리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나도 모르게 소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비멍’, ‘삼계탕멍’이었다.
그날 우리는 밤 9시가 지나서야 헤어졌다. 거의 5시간동안 회식을 한 것이다. 모두들 거나하게 취했다. 나도 모처럼 필름이 끊길 정도로 취했다. 다음 날 아침에 다들 모여서, 전날 만들어 놓은 닭죽으로 해장을 했다. 아침에 만난 동료들이 한결같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잘 잤냐’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전날 내 덕분에 재미있었다는 감사 인사를 한마디씩 했다.
내가 술에 취해서 전장군님과 러브 샷을 수도 없이 했고, 이런 저런 농담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틀어준 음악소리에 맞춰 전장군님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단다. 그것도 한 곡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곡을 불렀다고 한다. 나는 이 모든 장면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주당 1호’로, 전장군님은 ‘주당 2호’로 등록이 되었다. 남자 동료 4명에게 ‘주당 1호’부터 ‘주당 4호’까지 별명이 붙여졌다. 여자동료들이 회식에서 제일 술이 많이 취한 순서대로 ‘주당’이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이다.
비오는 날 닭을 잡는 것은 사실 고역이었다. 그날도 동료들의 옷이 모두 젖었다. 아니 물에 빠져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몇몇 동료들은 비옷을 입고 있었지만, 장대비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도 옷이 젖어 있었지만,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면서 그 열기로 옷을 다 말린 것 같다. 동료들과 만들어낸 수많은 웃음 속에서, 내 몸이 비에 젖어 있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