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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작위적인 방송프로그램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서른 여덟번째 글

by 유진

광복절날 서울 집에서 가족들과 쉬고 있는데,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의 카톡방이 울렸다. 그 이틀 뒤 강원도의 한 지상파 방송에서 우리의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싶단다. 그런데 우리가 진행하는 작업을 자연스럽게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출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태풍이 막 지나간 뒤라서 장마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을 해야 해서, 일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위해서, 온전히 하루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연출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와 몇몇 동료들은 카톡방에서 강하게 반발을 했다.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촬영하는 것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굳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연기를 해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간에서 소통을 담당했던 신반장이 무척 난처해했다. 자신도 강하게 요구해서 일부는 바뀌었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고 방송국측에서 이야기했단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굳이 이 촬영에 응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대표님이 끼어들었다. 횡성군청에서 요청하여 진행되는 것이니까, 응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던 4개월여 동안, 여기 저기서 인터뷰나 방송촬영을 하면서 10번 가까이 응해줬던 것 같다. 이전에는 모두들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가거나 인터뷰를 해갔다. 그래도 너무 자주 촬영을 하다 보니까, 동료들이 부담스러워했었다. 그런데 강원도의 한 방송국에서 이런 무리한 요구까지 하니까, 다들 마음에 내켜 하지 않았다.


2022년 8월 17일 하루는 온전히 이 방송국의 촬영을 위해서 희생된 날이 되었다. 아침 9시에 촬영팀이 온다고 해서, 우리도 9시에 모였다. 전날 수확할 수 있는 옥수수를 일부러 촬영을 위해 남겨놓았다. 남은 양이 얼마되지 않다 보니까, 옥수수 수확 작업은 한 시간도 안되어서 끝났다.

우리가 새참먹는 장면을 찍는다고 해서, 교장선생님과 신반장이 삶아온 감자와 옥수수를 펼쳐 놓았다. 우리가 생산한 작물을 먹는 장면이 담겨야 한다고 해서,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우리는 옥수수밭의 가장자리에 둘러 앉았다. 나는 카메라에 잡히기 싫어서, 구석자리에 앉아서 막걸리만 연신 들이켰다. 그때 신반장이 우리가 전날 수확한 꽈리고추가, 지금까지 출하했던 것 중에서 가장 높은 경매 가격인 한 박스에 4만 4천원이라는 소식을 전해줬다. 이것을 듣고 환호하는 우리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것도 미리 짜여진 각본이었다.

우리들이 단체로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한 데 이어서, 동료들과 개별적으로 인터뷰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 동료들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교장선생님 부부, 신반장 부부, 최선생님 부부만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개별 인터뷰 영상을 찍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아직 주변의 친인척이나 친구들에게 귀농하려는 나의 계획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장군님 부부, 선미씨도 개별 촬영을 피해서 빠져나가면서, 불평을 쏟아냈다.

“시청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하루 생활이라고 생각하면서 방송을 시청할 텐데, 이렇게 연기를 해도 되는 건가요?”

“농촌이 바쁜 시기라는 것을 알 텐데,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무리하게 하루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 맞는 건가요?”

횡성 18주차 수요일_강원 mbc 촬영_옥수수밭에서 개별 촬영중인 최선생님 부부_20220817_1660723429700.jpg

그날 오후에 우리는 송사장 농장으로 향했다. 송사장이 재배하고 있는 방울토마토를 수확하는 것을 촬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실 우리가 방문할 이유는 없었다. 송사장도 바쁜 와중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가 방울 토마토 따는 법을 알려주고 난 후, 리포터를 포함한 동료들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각자 수확하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이날 방송국 촬영은 오후 5시가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횡성 18주차 수요일_강원 mbc 촬영_송사장 토마토하우스 촬영중인 mbc 팀_20220817_1660723429304.jpg

이날 촬영의 여파는 다음 날까지도 이어졌다. 촬영 때문에 하지 못한 꽈리고추 따기, 장마로 인해 무너져 내린 노루망 보수 등등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그날 촬영한 강원도 지상파의 해당 프로그램을 다시는 시청하지 않게 되었다.


그 날로부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신반장 부부가 모 방송사의 귀농/귀촌 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촬영했다고 한다. 정부나 지자체는 나이든 사람보다는 젊은 귀농이나 귀촌인을 더 환영한다. 자연스럽게 30대의 젊은 신반장 부부는 이러한 정부 시책에 잘 맞는 사례이기에, 해당 방송사에서 접촉을 해온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이나 촬영을 해대니까 힘들어 죽겠어요. 그것도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연기를 배워야 할 지경이라니까요.”

촬영 기간중에 만난 신반장 부부는 연신 불평을 쏟아냈다. 1시간동안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촬영기간이 길었던 모양이다.

귀농이나 귀촌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더 많은 사람들을 시골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골생활을 찍는 프로그램 내용중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자칫 시골생활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상을 품고 귀농이나 귀촌을 한 사람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시골이 도시와 완전히 다른 생활 환경인데다가, 농사짓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너무 감성적인 모습에 치우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보다는, 희로애락을 적절한 비중으로 배치해서 시골생활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방송사들이 귀농이나 귀촌생활을 찍는 관점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안점을 두기 보다는, 농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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