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적 제재로 여기에 등재되어 있는 기업과는 미국인이든, 비미국인이든 거래가 원천적으로 금지됩니다. (미국의 힘)
문제는 여기에서 말하는 미국인의 범주인데 미국 시민권자뿐만 아니라 미국 내 위치한 외국법인도 미국인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겁니다.
이게 매우 광범위한 정의라서 해석이 까다롭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두 번째로는 2차 제재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NON-SDN, 혹은 SSI 제재라고 필드에서는 말하는데요, NON SDN으로 지정된 자와의 거래는 원천적으로 미국인만 금지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추가적으로 NON SDN 제재를 위해서는 특별한 행위에 대해서만 거래가 금지되는데, (포괄적인 제재가 아니라는 말)
예를 들어 '이런 기업의 주식은 러시아와 관련이 되어 있으니 구매하지 마시오' 등이 특별한 행위에 대한 제재의 한 예시라고 보면 됩니다.
이 경우는 크게 보면 미국인에만 해당이 되기 때문에 심사 측면에서는 오히려 신경 쓸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부분에 대한 검토를 한 뒤 이상이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저처럼 'Go'를 외치시면 됩니다.
'그래도 좀 걱정되는데'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1,2차 제재 대상여부를 확인했는데도 마음에 걸린다면?
최종적으로 미국 OFAC에 해당 거래를 진행해도 되는지 승인 여부를 득하는 절차도 있습니다.
다만 이게 제일 확실하긴 한데 실제 필드에서는 잘 진행하지는 않더라고요.
해당 승인절차로 괜히 문제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1,2차 제재대상자인지 여부에 대한 검토를 끝내고 저는 자신 있게 심사를 올렸고 2시간에 걸친 투심위 격론 끝에 부결을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고로 저의 투심위는 그 당시 길어야 5분이었습니다.
(부결의 스트레스로 담당 지점장님은 이가 빠지기도 하셨죠. ㅜ.ㅜ)
돌이켜보면 이 당시 해당업체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사활을 걸고 있는 해외사업이었습니다.
실제로 처음에는 정기예금으로 담보가 전액 커버되는 구조가 아니었다가, 나중에 저희가 예금 담보로 전액 커버를 요청하니 군말 없이 따라왔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죠.
모든 위험을 검토했다고 판단했으며 만에 하나를 위해 담보까지 전액 예금으로 커버했는데도 윗분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더는 무리해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반대의 근거가 '혹시라도 이벤트가 발생하면 우리 미국에 끌려가는 거 아니냐'였는데,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어서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습니다.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심사파트는 어느 조직에서든 최후의 보루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 리스크 체크가 첫 번째이긴 합니다만, '진짜 심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관련 수익도 챙겨봐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매년 30억 가까이 되는 수수료 수익과 5,000억의 정기예금 유치는 웬만한 PF 대출로 커버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잖습니까.
결국 지난 이야기지만 해당 수익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고,
선순위 환급보증 대신 취급한 부산의 브릿지론 대출은 1년 만에 부실이 났습니다.
이후 스토리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사는 중간에 중단되었지만, 해당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어려운 심사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해당건을 부결 맞은 지점장님과 국내 건설사의 대응이었습니다.
보통 심사역이 부결을 하면 지점장이든 거래업체든 심사역을 씹기 마련인데요.
'능력이 부족하다' 혹은, '의지가 부족하다' 등의 말들이 흘러 들어오는 게 태반입니다.
그런데 이건은 비록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에게 너무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참 이상 야릇한 경험을 선사해 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이 사람들이 단체로 미쳤나?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그때는 했었는데,
되짚어 보니 제가 주심사역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알아주셔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부결이 최종 확정된 후 거래처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술자리에서 상대 임원분이 저한테 해준 이야기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거였음)
"혼자서 싸우는 것 같아서 뒤에서 보기에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쳐다도 보지 않던 딜을 자기 회사 일처럼 끝까지 봐주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저에게 심사역님의 브리핑은 완벽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체크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외부 기관인 금융위/ 코트라 등에 이메일까지 보내면서 여러 가지를 확인해 주신 모습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