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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데이지 Sep 01. 2022

몸이 약한 아이

지금도 만성 신부전증과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있는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 홍역을 앓게 되어 입원을 하고, 고등학생 때도 신우신염으로 입원을 하며 거의 매년 입원을 하는 병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몸이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 성인이 되었다.


성인은 자신이 몸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 나이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라는 사실 때문에 건강을 관리하지 못했다고 신부전증과 갑상산 항진증을 동시에 앓게 될 확률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게 높은 확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일과 돈이 너무나 좋았다. 내 손으로 직접 돈을 벌고, 돈이 모여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렇게 매일 같이 일을 했고, 몸이 망가져 가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믿었다. 사실 그게 아닌데도 말이다.


밤늦은 퇴근, 주 6일 근무는 부모님이 걱정하시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직접 돈을 벌어오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이 아무래도 더 크셨을 것이다. 알아서 홀로 다 잘하는 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와중, 코로나로 인해 2주간 강제 휴식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린 몸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500M 안에 있는 병원에 홀로 걸어갈 힘이 없어 아빠가 차로 같이 가주셨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나는 아무 이상 없다는 병원의 말만 믿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사이 몸은 점차 망가져갔고, 스스로 계단을 오를 힘도 없어졌다. 생리는 끊긴 지 3개월이 넘어갈 무렵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 홀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에 가 검진을 받은 뒤 의사 선생님께 들은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학생, 안 아팠어요?" 나는 대답했다. "아팠어요." 선생님은 당황하시며 대답했다. "이건 경주에서 치료 못해요. 큰 병원 가야 해요. 왜 이 상태가 될 때까지 병원에 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서울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각종 검사를 끝낸 결과. 갑상선 항진증이 굉장히 심하다는 결과가 먼저 나왔다. 그 후 놀라운 사실은 항진증보다 신부전증이 더 심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입원과 병명에 대해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기 전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병원 가서 절대 한약 먹는다고 이야기하지 마. 괜히 의사 선생님들은 한약 싫어하니까." 그러나 신장내과 선생님이 "한약 먹었어요?" 하는 말에 차마 먹지 않는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네.."라고 대답하니 당장 한약을 끊고 그다음 날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코로나 시국 부모님이 상주하시지도 못한 채 홀로 입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모든 한약, 건강 보조식품 등을 끊고 약으로 살아가고 있다. 평생 병원과 약을 닳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사실 몸을 더 망가트려 빨리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던 삶은 살아야 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여전히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삶에 부모님은 일을 그만두고 글을 직업으로 삼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그럴 때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몸이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고 돈은 벌어야 하는데 내가 작가를 업으로 삼을 만큼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전과 다르게 능력 없는 글을 쓴다. 언젠가 그 글이 누군가에 닿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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