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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룰루 Jun 08. 2023

나는 예민하지 않아.

그냥 마음이 아팠을 뿐이야.


#. 1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새벽녘 멀리서 들려오는 창 밖의 차소리,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거실 화장실 문을 여닫는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에서 깼다.

어디 그뿐인가.

이중 암막커튼을 달아도 틈새사이 새어 나오는 아침 햇빛에 잠에서 깼다.

자꾸만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기 어려운 시간들이 늘어나자,

나는 잠자기 전에 귀마개를 꽂고, 암막커튼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간혹 미세한 소리에 잠에서 깰 때가 있는데

그날은 어김없이 잠결에 뒤척이다가 내 귀에서 귀마개가 빠진 날이다.

엄마는 내가 너무 예민하다. 고 했다.



#. 2


불과 몇 년 전,

나는 오너일가의 세액계산에서 실수를 하고,  

정말이지, 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 고통은 퇴사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우리 팀장님이,

우리 무님이,

우리 부회장님이,

나 때문에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의 실수를 그들에게 책임지게 만들고 싶지 않아

정말 많은 날들을 힘들어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고민이나 걱정이 있는 날엔,

잠들지 못했다.

멜라토닌이 함유된 영양제를 먹어보기도 하고,

우연히 수면유도제 성분의 약을 접한 후 의존한 적도 있다.

그것은 정말 신세계였다.




#. 3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아픔에 빠졌던 시기,

나는 더 잠들지 못했다.

자려고 누우면 불안하고 무서웠다.

사회적 이슈가 생기거나 개인적으로 아픈 경험을 한 날이면,

하루종일 매스컴에서 보여줬던 장면이,

낮에 경험한 잊고 싶은 기억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생됐다.

너무 졸린데, 정신이 번쩍 드는 건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 

아니, 온기까지도 필요 없었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누군가 말해주길 원했던 것 같다.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갔다.

다음날 아빠한테, 나잇값 못한다고 잔뜩 혼이 난 이후로,

나는 검색포털의 메인화면에 뉴스가 나오 않게 설정을 바꿔버렸다.

덕분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일이 생겨도

나는 잘 모른다.


사람들이 묻는다.

"넌 뉴스도 안 보니? 온 나라가 난린데?" 

네, 안 봐요. 그게 두려움에서 나지켜내는 이니까요.


 






최근 PT 수업 중에,

내가 선생님 설명에 집중하지 않고 잠시 딴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룰루님, 무슨 생각하세요?"

"네? 저,  딴생각한 거 티나요?"

"네,  티나요."

그리곤 집중력 이야기를 시작으로, 공황장애를 겪는 지인의 이야기까지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그저 잠에 있어 예민한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면 는 예민한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아팠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스스로 감내할 정도의 아픔이라 치료받을 생각을 못했을 뿐.


완벽주의자마냥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꽤나 신경 쓰며 사느라

정작 나 자신을 챙기지 못한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언젠가 읽었던 짧은 글을  공유해 본다.

(출처를 알 수 없음)



“할아버지, 난 왜 눈물이 많아요?”
눈물 많던 어린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하늘에서 귀한 마음을 선물해서지.
살다 보면 비겁해질 때도 있고,
이게 아닌데 하면서 자꾸 아닌 곳으로 갈 때가 있지.
사람들은 애써 그걸 모른 척하고
조금씩 마음에 덧칠을 해나가지.
그러면서 마음이 아팠을 게다.
그런 일에 대비해서 신은 눈물을 만드신 거란다.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신의 선물을 가진 거란다.
얘야, 눈물이 많은 사람은 강하단다.”

어린 손녀는 잘 우는 사람은 약해 보인다며
또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아니다. 눈물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
두고 봐라, 넌 그 눈물로 무언가 이뤄낼 거야.
울었던 시간만큼 움직일 테고,
그 움직임은 점점 커져서 큰 원을 그려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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