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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Dec 21. 2022

어느 겨울, 경계에 서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그 나이대 어린이들의 책장이 그러하듯, 어릴적 나의 책장은 위대한 업적을 세운 위인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위인전을 펼쳐든 나의 초미의 관심사는 위인의 생애업적이 아닌, 그들의 출생-사망연도였다.


15~16세기, 18~19세기처럼 두 세기의 경계를 목도한 위인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령 15세기와 16세기는 얼마나 달랐을까 하는 것과, 두 세기의 차이가 그 경계를 경험한 사람에게 얼만큼 놀랍고 경이로웠을지 따위의 것들이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도 한 몫 했으리라.

이 때만 해도 1990년대에 태어난 나 또한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를 경험하는 행운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나 보다.     


어쩌면 나는 모든 경계에 선 것들을 동경했다.

비슷한 것들 사이의 경계가 모여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버리는 그 조화가 신비로웠다.

‘비슷하지? 아직도 비슷하지? 아직까지도, 여전히 비슷하잖아’ 하며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심을 늦추게 하다가, 언젠가 처음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하는 놀라움.

흰 색에서 옅은 회색으로, 회색으로, 더욱 진한 회색으로, 결국에는 검은 색으로 변해버린 그라데이션을 보듯 말이다.

그래서 난 경계에 선 모든 것들을 한 번 더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세기(世紀)’와 같이 인류의 역사가 걸터앉는 시간의 경계도 있지만, 한 명의 인간에게는 10대, 20대, 30대처럼 하나의 개체를 가로지르는 ‘대(代)’라는 시간의 경계가 더욱 와닿을 것이다.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는 어느 겨울, ‘20대’라고 하는 어색한 칭호가 나를 찾아왔다.


어린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렸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나이였지만,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나는 아주 다양한 경험들을 욱여넣을 수 있었다.

부모님, 선생님, 혹은 주변 어른들의 시선과 울타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인생의 나침반을 만들어 나가야 했고, 어떤 것을 부담할 이유도, 책임질 이유도 없던 지난 20년의 시간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10대의 나에게 ‘친구’라는 명사는 ‘한 반’이라는 사회질서로 묶인 불편한 관계들까지도 포함하는 말이었지만, 20대의 나에게는 스스로 친구와 대인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10대에는 소질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던 체육, 컴퓨터 과목에까지 능해야 했지만, 20대가 되자 좋아하는 수업만 듣는 일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좋아하는 교수님과 좋아하는 주제의 수업만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고, 이러한 편식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다. 세상만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같았던 평범한 친구들은 20대 중반을 넘어서자 회계, IT, 미학 등 각자 서로 이해하기 힘든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취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에 형성되었다.

체육 등 몸을 쓰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목숨이라도 건 듯 전통무용에 뛰어들 줄은 10대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감상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창작하고 싶을 정도로 미술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한다는 사실 또한 20대의 중턱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10대의 난 내가 일평생을 한국에서만 살 줄 알았지만, 20대의 2할 이상을 지구촌 곳곳에서 살아보며 남은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갈 수 있었다.     



다채로웠던 20대를 뒤로 하고 30대의 문턱에 서 보니,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만들어낸 나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다.

모든 경계에 선 것들이 그러하듯 30대가 시작되면 나에게 다른 얼굴을 한 방황과 변화들이 찾아오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내 모습을 그려내느라 열심히 방황한 20대를 보냈기에 어쩐지 조금은 자신이 생긴다.

이젠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넘어, 그동안 그려온 청사진을 바탕으로 보다 성숙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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