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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kyou Jun 08. 2022

뭔가, 특별한 아빠가 되는 날

딸에게 사랑을 씁니다

하루는 딸에게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아빠가 유치원에 가서 동화책 읽어 줄까?”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초대받아 딸아이와 친구들 앞에서 동화책을 읽어줬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따님이 옳다구나 하고 대답했다.

“응! 좋아 아빠, 유치원에서 책 읽어줘!!”


어린이집 다닐 때 일이라 딸아이가 너무 어려서 당연히 기억 못 할 줄 알았다. 그때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매우 환영했다. 갑자기 유치원 선생님께 메모를 써달라고 딸이 종이를 가져왔다. ‘허허, 이 녀석도 참, 뭐 설마 진짜 초대받겠어?’ 하는 마음으로 유치원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간단한 메모를 썼던 것 같다. 유치원 선생님께 이 메모가 실제로 전달됐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OO 아빠입니다.
OO에게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동화책 읽어준 기억이 나서 말했는데, 유치원에서도 책 꼭 읽어 달라고 하네요. ^^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초대해 주세요. 참석해서 OO와 친구들에게 책 읽어 주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때마침 유치원에서 학부모 초대 수업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아내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아내로부터 그 말을 듣고 망설였지만 흔쾌히 응하기로 했다.


따님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뭐만 하다가도 몇 번만 더 자면 아빠가 유치원에 오는 날이라고 말했다. 딸아이로부터 심지어 책 주문이 들어왔다. ‘뭔가 특별한 아저씨’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을 유치원에서 읽어 달랜다. 평범한 회사원이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니는 이야기다. 가발이 필요한 아픈 아이들을 위해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발로 다니는 멋진 아저씨가 주인공이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준 책인데 너무 인상 깊었나 보다. 동화책을 사들고 유치원 학부모 초대 수업에 참여했다. 바로 그날이 온 것이다.


수업은 두 시간 동안 평상시 수업을 어떻게 받는지 짤막하게 보여 주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냄비 받침 대와 입체 꽃 만들기 수업도 함께 했다. 쉬는 시간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딸이 그린 그림, 가족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따님이 이런 곳에 이렇게 수업을 받고 하루를 보내는구나. 갓난아기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무리 지어 있는 모습, 선생님 질문에 손도 번쩍 드는 모습이 흐뭇했다.


학부모 초대 수업 말미에 동화책 읽어주기 시간이 배정됐다. 학부모 수업에 참여하면서도 이 시간이 점점 다가와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 앞에서 잘 읽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된 것이다. 이번 수업의 주제가 ‘가족’이라고 하니 준비한 책의 주제와 어떻게든 연결해서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싶기도 했다. 이왕이면 딸아이에게 추억이 되길 바랐다. 두 시간의 수업은 어느덧 막바지에 다 달았다. 드디어 따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빠의 시간이 온 것이다.


딸과 아이들 앞에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앉아서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쥔 오른손이 희미하게 떨려오는 게 보였다. 따님과 눈을 마주친 채 싱긋 웃고 나선 힘을 얻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무엇보다도 딸이 행복해 보인다. 이야기 중간중간 자꾸 마스크가 내려간다고 나보고 올려서 마스크 쓰라고 딸아이가 꾸짖기도 했다 (그때마다 웃음이 났다). 책 읽기는 금방 끝이 났다.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저씨도 뭔가 특별한 아저씨가 되려고 이렇게 용기를 내보았어요.

친구 여러분, 특별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다들 언니, 형이나 동생이 있나요? 언니나 동생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 엄마와 아빠에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웃으며 안아는 주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뭔가 특별해질 수 있어요. 지금처럼 다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래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이 시간은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뭔가 특별해진다는 것, 그것이 뭔가 특별한 것을 꼭 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에서도 잠깐 시간 내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해진다. 나아가 사랑스러운 눈빛, 말 그리고 손짓만으로도 특별한 아빠가 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마음을 잘 간직할 수 있다면 나는 항상 특별한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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