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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 별 Jan 06. 2022

거짓말쟁이 걸음

나는 습관성 이석증 환자이다. 어떤 날은 기분 좋지 않게 예고가 되는 날도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원인 없이 어지럼증이 오는 경우도 있다. 막내 임신 초기부터 경험을 했으니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과 함께 나의 이석증도 그렇게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긍정적이고 느긋한 성격인 내게도 어지럼증은 두려움 중에서도 큰 두려움이 되었다. 그렇게 이석증을 앓다 만난 전정기관 신경염이라는 질병은 ‘이석증은 아무것도 아니야 , 나도 있단다.’라고 겁을 주듯 다시 돌아보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42살에 난 늦둥이 아들은 나이 많은 엄마가 어찌 키웠는지 학교를 가서 적응하기를 힘들어했다. 분리불안 증세도 보이고 유아기적인 성향을 지녔다 보니 저학년 일 때는 유난히 힘든 생활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사정이 있었고, 큰아들을 질병으로 잃은 내게, 다시 얻은 아들은 돌발적인 사고나 질병이 찾아올 수 있을 거란 불안감이 월등히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적응을 힘들어하던 아들을 보며 난 여유를 부렸다. ‘특별히 아픈 거 아니면 어때 커가는 과정이란 알 수 없는 거구. 원래 애들은 다 그런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런 나의 태도는 선생님이 이해하시기 어려웠나 보다. 담임선생님과 자주 통화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서 나도 아이도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학교에 가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엔 교실 안쪽 뒷자리에 서서, 그다음은 교실 문밖으로, 그다음은 계단에서,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는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고  교실에 들어갔고, 그렇게 천천히 새로운 적응을 하며 어느새 도서관 문 앞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으로는 ’ 괜찮아, 괜찮아 ‘라고 했다. 하지만 오며 가며 물어보시는 선생님과 가끔은 학교를 오가는 학부모 사이에서의 관심이나 질문이 내겐 부담이 되었던 이유일까.    

 

어찌 마음고생이 몸으로 표현 안 될 수 있을까 싶게 내겐 일어나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어지럼증이 생겼다. 그래도 이석증은 며칠 자세만 잘 유지하면 말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 지독한 애는 눈조차 뜰 수 없게 만들었다. 고통이 심하다 보니 무슨 병명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그런 와중에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자는 말은 힘들어하는 아들과 나에게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선고와 같았다.    

그러니 난 입원을 거절했고 나는 휠체어를 타며 통원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생각처럼 치료에 몰두하지 못했는지 거의 2달 가까이를 누워서 지내며 일상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들에게 한 마디씩 할 수 있었고 집에 엄마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회복된 이후에도 내게 어지럼증이란 돌아보고 싶지도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반대로 애지 간한 불편함은, 통증은 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나이 또래의 갱년기도 견딜 만 하단 생각이 들었고 어렵지 않게 지나갈 거라 가벼이 넘겼다.

온몸이 쑤시는 몸살과 관절의 통증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뻑뻑해진 눈은 당연히 노안 때문이고 안경을 벗어야 보이는 글자도 그냥 순리대로 나이 들어간다고 생각했기에 저녁에 빛이 산란되어 보이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시야가 깔끔해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고 눈이 너무 피로하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아니 안과를 가봐요." 어이없게 난 어지럼증에 너무 몰입을 한 나머지 다른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나 보다. 난 이 무심한 듯한  한마디에 안과 진료를 가게 되었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서 각막에 상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방을 받게 되었다.     

안약을 넣고 인공눈물을 넣고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유난히 눈이 시려서 불편했던 것도 왠지 거짓말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걷는 걸음까지 가벼워졌다.    

 

가벼운 걸음걸이로 씩씩하게 걷다가 웃음이 나왔다. 꾀병이고 엄살을 부리는 나를 내가 보니 그냥 우스웠다.

이유는 나의 기분이었을 텐데. 참으로 유치하기가 그지없단 생각이 들었다.


머리까지 맑아지는 이 느낌은 무엇인지......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우리 몸은 없는 듯하다.

마음조차 몸을 좌우하고 몸조차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새삼스레 다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알고 있어도 매일은 그냥 지나치는 것들 사이에 오늘의 경험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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