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아들은 육아를 하기에 적당한 4살 터울이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들은 선천적 장애를 동반하고 있다 보니. 태어날 당시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커가면서도 쉽지 않은 상황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엄마 아빠가 아들의 희귀병으로 더 손이 가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걸 눈치를 챈 건지, 또래의 다른 아이와는 다르게 유난히 혼자서 해결을 하는 일들이 많았다. 친구네 놀러 갔는데 변기가 막힌 걸 보고 어린 나이에 변기 뚫는 도구를 이용해 막힌 변기를 뚫어 놓거나 아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야무지게 시작하고 마무리까지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지내는 날이 많았다. 1학년 때쯤 학원차량을 기다리다 남자아이를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를 받고 너무 놀란 가슴에 죄송하단 이야기와 함께 연고를 가지고 사과를 하러 갔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어떤 이유였던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딸아이한테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연락을 받고 먼저 사과를 하러 가게 되었다.
상대방 엄마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하고 아이에게는 괜찮은지 물어보게 되었다. 그리곤 아이에게도 미안하다며 “그런데 왜 그랬던 것 같니?”라고 물어보니 역시나 아이여서 였을까? 자기가 딸을 자주 놀렸는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괜찮은 줄 알고 아이가 가족을 향해 좋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딸아이가 갑자기 아이에게 덤벼들었고 대항할 틈도 없이 그렇게 당했다고 했다. 그리곤 그 아이는 내게 죄송하다고 했고 그 옆에서 지켜보았던 아이 엄마도 “왜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다친 것만 말했냐”라고 하며 그전까지 병원을 가겠다며 큰소리를 치던 아이 엄마는 태도를 바꾸며 그런 상황인지 몰랐다고 이야기를 하며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난 아파트 벤치에 앉아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딸아이가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았고, 어쩜 그것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사실이라는 것......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에 아픔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그런 마음을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않고 지냈다는 사실에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들의 움직임은 더 커졌고 딸아이는 큰 탈없이 잘 지내주었다.
오히려 자신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였을까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야무지게 자라주었다. 무엇을 배워도 열심히 하려고 했고 그런 열심히 다방면으로 좋은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었다.
1학년 어느 날인가 일기를 썼는데 5장 넘게 상세하게 쓰기도 했고 그림을 그렸는데 외부에서 상을 받고 어느 곳에선가 전시되기도 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자라 주는 딸이 있어 너무나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던 날, 평상시 친분이 있는 딸아이의 친구 엄마가 내게 차를 한잔 하자며 조용히 불렀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 자신이 보기에는 딸아이가 너무 잘하는 게 많고 일반 아이랑 조금 다른 듯하니 잘 키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며 그런 것에 비해 가족이 너무 지원을 못해주는 것 같으니, 혹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둘째는 과감히 시설로 보내고 아이 뒷바라지를 하는 건 어떠냐고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울 아들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통제도 못하고 잠시 잠깐도 가만히 있지 않을 때였으니, 주변에서 잠깐씩 보던 엄마들은 안쓰러운 마음도 있을 듯했다. 하지만, 난 너무나 놀랐다.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하는 걸까? 이들이 나를 알고는 있는 것일까?’ 물론 내가 아들 치료를 받기 위해 아님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다니느냐 엄마들과 자주 어울리지도 못했지만 그렇게 까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 엄마는 내게 무언가 조언을 해주고 싶었겠지만, 난 그 자리에서 말했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 반쪽씩 똑같이 나눈 엄마라고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똑같이 딸 엄마 아들 엄마라고 난 그걸 지키기 위해 죽을 듯이 노력하고 있고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매일을 전쟁처럼, 나머지 몫은 내가 아니라 내 아이들의 몫이라고, 다시는 그런 말 하면 얼굴도 보지 않겠다고,,,. ”
난 그 이후로 그 엄마와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이없는 그날의 일이 생각이 나서, 화가 누그러들지 않았다. 한참 후 그 엄마는 이사를 가게 되었고, 우리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돌아서 보니, 딸아이에 대한 생각도 더 많아졌다. 아들을 잃고 나서 죽을 것 같은 슬픔에 못 이겨 “넌 혼자서 뭐든 할 수 있으니 엄마가 필요 없잖아 네 동생은 달라 엄마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어”라며 목놓아 울은 적도 있었다. 똑같은 반쪽씩의 엄마라고 해놓곤 아들을 잃고서는 난 딸아이에게 그렇게 몹쓸 말들을 내뱉었다.
동생을 잃은 딸아이는 어린아이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리곤 아직도 동생의 생일날이면 케이크는 샀냐고 물어보고..., 아들을 보낸 성탄절 전날에는 꼼짝 않고 집을 지키곤 했다. 이제는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가 중학생이 되었고, 딸아이는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딸아이와 편하게 아들 이야기를 꺼내보지 못했다. 돌아보니 내 아픈 만큼이나 딸아이의 삼켰던 아픔 또한 컸을 텐데. 왜 이제야 돌아보게 되는지 그때는 정말 미안하단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