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목나무와 매미 Jul 06. 2024

소수자로 살아남기

<마이너 필링스>(마티, 2022)를 읽고

 백인이 주류를 차지하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저절로 위축이 된다. 여러 번 인종차별을 경험한 이후로는 더 몸을 사리게 되었다. 포르투갈에 갔을 때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마침내 직원이 왔을 때, 메뉴를 묻는 우리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주문만 받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달랐다. 현지인이나 하얀 피부를 가진 외국인에게는 음식에 대해 설명도 친절하게 하고 일상적인 대화도 나누었다. 그 이후로는 더 몸을 사리게 됐다. 식당을 찾을 때에도 직원이 친절하다는 리뷰가 있는 곳만 찾아다녔고, 현지인들이 쳐다보고 웃으면 '왜 웃는 거지'하면서 불쾌해졌다.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수치심을 일으킨 공격자가 내 삶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나는 계속 존재한다고 상상하고 내 그림자를 그자로 착각하고 몸을 움츠린다.

<마이너 필링스>, 109쪽

 그나마 내가 겪은 경험들은 여행자로 잠깐 동안 겪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평생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이 고향임에도 평생 이방인 취급받으며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채로 불안해야 한다면?

 캐시 박 홍은 <마이너 필링스>(마티, 2022)를 통해 백인 중심 사회에서 동양계 미국인으로 사는 것을 이야기한다. 캐시 박 홍은 시인이자 활동가로 자신이 동양계 미국인 여성으로 겪었던 불합리함을 시적으로 털어놓는다. 캐시 박 홍의 시적인 문체는 오히려 그의 경험을 더 직관적으로 이야기한다. 에피소드들을 함축적으로 담담하게 전달함으로써 그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캐시 박 홍의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미국에서 겪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차별이다. 캐시 박 홍에 의하면 아시아인들은 차별의 대상이다. 다만,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대한 차별과는 결이 다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백인들에 의해 고용된, 다른 인종 미국인들에 대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 아시아계는 비로소 백인들에게 존재해도 된다고 인정받는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무슬림이나 트랜스젠더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다행히 심한 감시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연성 파놉티콘 속에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신을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조건부 실존을 특징짓는다.

267쪽

 저자는 인종차별 외에 한 가지 더 지적한다. 바로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이다. 아시아계 여성들은 아시아인, 여성이라는 중첩된 억압을 받는다. 책에 나온 테레사 학경 차는 이러한 중첩된 억압을 대표한다. 그는 성폭행 후 잔인하게 살해당했음에도 그의 사건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그 이유는 그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아시아계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경찰들의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언론들은 잔혹한 범죄에도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아시아계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이러한 중첩된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여러 대안을 모색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부러 broken English(어색한 영어)를 이용하여 시를 쓴다. 영어가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영어는 제국주의의 언어기 때문이다. 이러한 캐시 박 홍의 노력은 '만국 공용어'로 불리는 영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영어는 제국주의의 언어다. 이러한 사실은 분명 영어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도 "당신의 영어는 못 알아듣겠다"라며 비아냥대는 콜센터 직원에게 "내 영어를 알아듣는 직원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한 인도인이 진상이 아니라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임을 명확히 해준다.

 ​더 나아가 비백인 공동체와의 유대를 모색한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지위는 흑인 민권운동에 빚을 졌다. 흑인들이 흑인 민권을 눈에 보이는 문제로 만듦으로써 미국 안의 다른 인종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인식하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비백인 미국인들은 서로의 인종 안에 갇혀있다. 비백인 미국인들이 연대하지 않는 한, 비백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무런 근거 없이 일본인들을 강제 수용했던 곳이 현재는 중남미 출신 아이들로 채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캐시 박 홍의 경험은 사실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비이주민출신 한국인들에게는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거주한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서구에서 소수자로 사는 아시아 여성으로서 과거에 겪었고 또 지금도 겪고 있는 차별과 편견은 어떤 보편성을 형성하여 작가의 시각으로 가까이 다가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272쪽

 내가 겪었던 해외여행에서의 차별을 제외하고도 여전히 이 책이 우리에게 유효한 까닭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세계화, 다문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이주민 출신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이너 필링스>는 소수자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우리에게 중요하다. 다수인들은 생각해보지 않은 소수자의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다양화되는 사회에서 <마이너 필링스>는 소수자로 살아남는 일이 어떤지, 다수자인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들을 대해야 할 것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