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허블, 2024)를 읽고
최근, 한국 SF 소설의 활약이 돋보인다. 풍부한 관련 지식과, 탄탄한 스토리, 잔잔한 감동까지 주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들을 비롯하여 천선란, 조예은 등 작가들의 SF 소설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는 2022년 부커 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 평론가*는 우리나라 SF 인기의 이유를 과학기술 발달과 경제적 풍요에서 찾는다.
한국인은 이제야 외적 내적 우주를 상상력을 통해 들여다볼 충분한 지적 여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SF를 하드 SF와 소프트 SF로 분리하여 앞으로 우리나라의 SF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하드 SF란, 기존 과학의 논리를 SF에 녹여내는 것으로,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터스텔라>나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가 그 예다. 반면에 소프트 SF란 과학적 사실에서 좀 더 자유로운 SF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나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예로 들 수 있다.
필자에 따르면 SF는 좀 더 정밀한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어야 한다. 상상력만으로 이루어진 SF는 사실감과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사실만 가득한 SF는 독자의 몰입을 깨뜨린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 등의 소재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SF가 지속적으로 흥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학 분야에서 소재를 차용하고, 또 상식 혹은 더 깊이 있는 수준에서 과학적 사실에 부합한 탄탄한 전개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허블, 2024)은 SF의 발전과정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물론 빠져들어서 읽었고, 훌륭한 작품들이었지만) 소재에 제한이 있었다. 수록 작품 모두의 주요 소재는 '인공지능'이었다. 단순 조력자에서부터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인공지능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긴 했지만 결국 모두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미래'를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소재 반복에 대한 고민은 이번 한국과학문학상 심사평에서도 드러난다.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독자의 눈물샘을 건드리는 로봇 이야기가 여전히 시장에서는 무수한 콘텐츠의 하나로서 환영받을 수 있으나, 주머니 속의 송곳을 가려내는 공모전의 벽을 넘기에 이제 그것만으론 살짝 어려움이 있지 않을지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394쪽, 구병모의 심사평 중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는 인공지능 외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가져온 소재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확장 욕구와 그에 맞는 100km의 거대 로봇(<우리의 손이 닿는 거리>), 우주 너머의 지적 생명체와 꿈을 통한 연결(<개인의 우주>), 별의 탄생과 죽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극(<피폭>), 서부극과 타임슬립의 합작(<달은 차고 소는 비어간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디스토피아' 혹은 '인간 수준으로 발전한 인공지능과의 조화' 등의 진부한 재료 외에 다른 신선한 재료들을 가져왔다. 특히 <우리의 손이 닿는 거리>와 <개인의 우주>는 여기에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는 적절한 요리법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신뢰감을 높였다.
물론 인간 사회의 문제들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인간의 개척 정신으로 포장한 끝없는 욕심(<우리의 손이 닿는 거리>), 인공지능(혹은 인간)에 대한 착취, 빈부격차(<하늘의 공백>), 환경파괴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일들(<피폭>) 등 우리 주변의 문제들을 SF의 형식을 빌려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수상작품집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달은 차고 소는 비어간다>의 최우준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과학 기술 전공자 혹은 관련자였다는 것이다. 김초엽의 소설이 그렇듯이, 이러한 작가들의 배경이 소설들을 더 짜임새 있고 개연성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작가들의 사실 고증에 대한 노력은 작가 노트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광물'의 정체를 규정하기 위해 지구과학과 지질학, 광물학, 광물 백과를 겉핥기 식으로라도 섭렵해야 했고, 채광 산업으로의 필연적 귀결 때문에 광업을 공부하고 이해하느라 애를 먹었으며, 제목이 제목이다 보니 '피폭' 현상의 원인인 핵기술 원리 및 역사와 핵 산업의 맹점을 두루 찾아보고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데도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343쪽, 존 벅의 작가노트 중
크리스토퍼 놀런 및 그 제작자들은 <인터스텔라>를 제작하기 위해 물리학 강의를 몇 년 동안이나 수강했다고 한다. 여기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인터스텔라>는 더 몰입감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명작으로 남았다. 이런 점에서 단순한 '공상'과학에서 벗어난 듯한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앞으로의 한국형 SF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655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