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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Aug 14. 2024

작은 날개 끝에 힘을 더해 전영호<Butter-Fly>

<아무튼, 디지몬>(위고, 2022)을 읽고

 <아무튼, 디지몬>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홀린 듯이 집어 든 건, 어린 시절 좋아했지만 지금은 단종되어버린 과자를 마트에서 발견했을 때 집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명탐정 코난>, <달빛 천사>, <원피스>, <나루토> 등 90년대생들의 학창 시절은 항상 명작 애니메이션들이 함께였다. 그중에서도 <포켓몬> 시리즈와 <디지몬> 시리즈의 인기는 압도적이었다. 가끔 포켓몬을 더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디지몬을 더 좋아하는 어린이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나는 디지몬을 더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피카츄, 잠만보 등의 포켓몬들도 귀여웠지만, 포켓몬은 친구 같은 반려동물의 느낌이었다. 반면 디지몬은 반려동물의 외형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서로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힘들 때는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


그래도 나는 외로운 매튜 곁에 있어주는 다그치지 않고 그 외로움에 함께 파묻혀주는 파피몬이 좋았다.

34쪽

 <아무튼, 디지몬>(위고, 2024)는 나처럼 디지몬파(?)였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가 디지몬을 좋아하게 된 이유, 디지몬의 등장인물과 에피소드에 대한 본인만의 해석, 디지몬에 관련된 자신의 기억 등이 책에 드러나 있다.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거의 매 에피소드마다 악역이 등장하는데, 악역에 대한 저자의 접근이 새로웠다. 특히 <디지몬 어드벤처>(디지몬 시리즈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첫 시리즈가 <디지몬 어드벤처>다.)의 후반부에 나오는 피노키오몬을 다루는 저자의 방식은 그동안 악역을 단순하게 바라봤던 생각을 수정하게 했다.


고로 악당에게는 사연이 있어야 한다. 이유 없는 악은 없다.

105쪽

 어린 시절에는 주인공들을 괴롭히던 악역들을 마냥 나쁘게만 생각했다. 특히 피노키오몬은 피노키오를 음산하게 닮은 외모에, 부하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없애버리는 잔인함, 여기에 엄청난 땡깡까지. 애니메이션을 본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억나는 걸 보면 엄청 싫어했었던 듯하다. 저자는 이런 피노키오몬을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상태에서 멈춰버린 디지몬"(44쪽)으로 언급하며 안쓰럽게 생각한다. 피노키오몬의 행동과 성격 이면의 배경을 보게 된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피노키오몬이 필연적으로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게 됐다. 고길동이 짠해지면 어른이 된 거라더니, 피노키오몬도 짠해지는 걸 보니 조금은 성장했나 보다.

 저자는 힘들 때 디지몬에게서 받은 위로들도 함께 전한다. 저자가 어린 시절 디지몬을 통해 얻은 위로들은 지금의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매튜의 외로움을 이해해 주던 파피몬처럼, 소라의 마음을 헤아려주던 피요몬처럼 저자의 위로들은 치열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다독여준다.

도망치는 때를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 생각한다. 북토크에서 독자들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면, 나는 도망치라고 말한다. 견디고 이기는 건 나중 일이고, 숨이 막히면 우선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도망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삶은 전쟁터가 아니다. 왜 삶이 전쟁터여야 하는가?

85쪽

 <아무튼, 디지몬>을 읽으면서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왜 디지몬을 좋아했는지, 디지몬을 좋아하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가 기억났다. 동시에 뜻밖의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저녁엔 디지몬에 대한 추억과 새롭게 얻게 된 해석을 가지고 에피소드들을 다시 천천히 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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