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전기(biography),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 2022)에는 3가지 내용이 다 담겨 있다. '어류'에 대한 새로운 분기학적 관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 룰루 밀러 본인의 인생. 그래서 이 책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
저자 룰루 밀러는 자신이 절망에 빠졌을 때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매료되었다. 그에게 닥친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탐구할수록 그의 여러 면모와 맞닥뜨린다. 열정적인 과학자, 뛰어난 교육자, 잔혹한 우생학자 등등.
다층적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에서 룰루 밀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228쪽
룰루 밀러가 찾은 인생의 인사이트 말고도 이 책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넘쳐난다. 첫째,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우생학의 관계다. 조던이라는 인물 자체를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의 양면성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그의 우생학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부적합자'라고 이름 붙은 미국의 무고한 시민들에게 끼친 그림자들은 일본의 731부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등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의 출판으로 조던의 이름이 대학에서 사라졌다는 데서 통쾌함을 크게 느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째, 분기학적으로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사실. 고정관념을 버리고 경험적으로 탐구해야 과학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룰루 밀러의 대단한 필력이다. 조던의 전기, 과학적 사실을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 물 흐르듯이 연결한 점이 놀라웠다. 과학 지식, 전기, 에세이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합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러모로 생각할 지점을 많이 남긴다. 룰루 밀러와 함께 '우리'가 왜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고,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에서 열린 마음에 대해 고찰해 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