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장>(문학동네, 2025)을 읽고
연매장 A Soft Burial
'연매장'은 생소한 단어다. 연매장의 뜻은 책 밑에 쓰인 영어, A Soft Burial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연매장이란 관은 물론 감싸는 천이나 멍석도 없이 주검을 곧바로 흙에 묻는 매장 형태를 가리킨다.* 연매장을 하면 환생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연매장>(문학동네, 2025)은 자신의 가족을 연매장할 수밖에 없었던 딩쯔타오의 삶을 보여준다.
기억을 잃은 채로 강에서 구출된 딩쯔타오는 우자밍이라는 의사와 결혼해 칭린을 낳는다. 우자밍이 교통사고로 죽자 그는 가게를 건사하기 위해 가정부 일을 했다. 칭린은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해 큰 저택을 마련하고, 그 집으로 딩쯔타오를 데려온다. 화려한 집 내부에서 딩쯔타오는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칭린이 "엄마의 집"이라고 하자 딩쯔타오는 "체런루? 아니면 싼즈탕?"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는다. 이어 "여기, 지주의 집 같지 않니? 재산 분배가 두렵지 않아? 그들이 찾아올 거야"(51쪽)이라는 엉뚱한 말을 한다. 그리고 "넋이 나간 듯 다른 사람한테 전혀 반응하지 않"(91쪽)는 상태로 변한다. 칭린은 어머니가 했던 말을 단서로 삼아 딩쯔타오의 과거를 찾아보기로 한다.
중국의 농지 개혁
<연매장>은 중국의 농지 개혁을 배경으로 한다. 1950년 국공 내전 이후 중국 공산당은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지주로부터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분배 대상은 농지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도 물건처럼 배당되었다. 딩쯔타오의 시가였던 루씨 집안의 하녀, 쯔핑은 이렇게 말한다.
마을 동쪽의 땅딸보가 저를 지목했다고 들었습니다. 귀머거리나 바보가 아니고 멀쩡하지만, 투쟁대회 때 서쪽 마을의 웨씨 어르신을 매질하는 걸 보았습니다. 얼마나 악독하던지, 그런 사람과 함께하기 싫어요.
208쪽
토지를 분배할 때 지주들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농민들은 거의 광기에 휩싸여 지주라면 가리지 않고 모욕을 주고 죽였다. 마오쩌둥은 당시 농민 1000명당 지주 1명을 죽이라고 할당량까지 하달할 정도였다. 물론 그보다 많은 약 200만 명의 지주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딩쯔타오의 친정과 시가 모두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았다.
모두 보았겠지. 비탈 남쪽과 북쪽의 대부호들이 모욕이란 모욕은 다 받았다. 심지어 대부분 목숨까지 잃었어. (중략) 누구에게든 후했고 무슨 일이든 참았지. 다이윈의 오라비는 정부를 위해 일하며 곳곳에서 군량미를 모았고, 우리 집도 꽤 많은 식량을 내놓았다. 결과는 어땠지? 링윈은 부모를 구하러 오는 길에 총에 맞아 죽었다. 부모를 구하지도 못했고 자기 목숨마저 잃었지.
205쪽
토지개혁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 소설 속에서 토지개혁에 참여했던 라오치마저 이렇게 말한다. 토지개혁은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평생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말 말할 게 못 됩니다. 말을 꺼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라니까요. 제 고모네는 아들 하나만 빼고 가족이 전부 죽었습니다.
76쪽
망각과 기록 중 당신의 선택은?
칭린은 친구 룽중융과 촨둥의 장원들을 조사하면서, 류진위안과 완저우에 가면서, 아버지 우자밍의 일기를 읽으면서 부모가 겪었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는 부모님이 숨긴 과거를 마주하면서 생각한다.
세상이 뒤바뀌는 격변의 시대에 개인은 얼마나 고독하고 미약해지는 걸까?
300쪽
하지만 그는 결국 망각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그는 부모님의 과거를 잊는 방법으로 강하게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과거를 잊는 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망각이 있어서 나와 네 어머니는 이렇게 오랫동안 편안히 살 수 있었다. (중략) 칭린은 알기 싫은 알려 하지 않는 것도 강함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314쪽, 437쪽
반면 칭린 부모님의 과거를 함께 연구하던 룽중융은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 그는 촨둥 장원에 대한 책을 쓰면서 장원에 살았던 사람들을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룽중융이 말했다. "(중략) 어떤 사람은 전부 기억하기를, 또 어떤 사람은 잊기를 선택해. 백 퍼센트 옳은 선택이란 없고, 그저 자신에게 맞는 선택만 있을 뿐이야.(중략)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진지하게 써 내려갈 작정이야. 너는 필요 없을지 몰라도 역사는 진실이 필요하거든."
442, 444쪽
우자밍, 딩쯔타오, 칭린은 토지개혁의 당사자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아픈 기억을 잊기로 했다. 룽중융은 제3자의 입장이다. 그는 역사를 위해 기록을 선택했다.
소설의 몰입력
<연매장>의 가장 큰 장점은 몰입력이다. 소설은 칭린이 부모님의 과거를 찾으러 가는 과정과 딩쯔타오가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러 가는 과정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과거의 인물들이 다른 모습으로 현재에 나타나며 과거 이야기는 현재의 시점에서 설명된다. 추측과 의문이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읽다 보면 순식간에 책의 마지막이 나타난다. '망각과 기억의 선택',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얻게 되는 교훈' 등의 주제는 무겁지만 소설의 서술 방식은 500쪽에 가까운 책을 순식간에 읽어나가게 한다.
<연매장>은 소용돌이치는 현재와 과거의 입장에서 토지개혁을 바라봄으로써, 격변의 시대에 망각과 기록 중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