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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속에서 발견한 희망

<타타르인의 사막>(문학동네, 2021)을 읽고

by 고목나무와 매미
타타르인의 사막


사관학교를 막 졸업한 조반니 드로고. 그는 "죽은 국경선"이라고 불리는 바스티아니 요새에 도착한다. 요새는 "의무만이 강요되는 세계, 엄격한 규율만이 남아 어떤 영광도 찾아볼 수 없는 세계"(27쪽)였다. 드로고는 바로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풍경에 대한 감정과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으로 떠나지 않기로 한다. 드로고는 바스티아니 요새에서의 긴 근무를 시작한다.


드로고의 기다림

<타타르인의 사막>(2021, 문학동네)은 이탈리아 내에서 파시즘이 극에 달하던 1939년에 출간되었다. 부차티는 조반니 드로고를 통해 당시 팽배하던 허무주의를 이야기한다. 조반니 드로고는 출세, 결혼 등을 포기하고 바스티아니 요새에 남는다. 그가 바스티아니 요새에서 기다리던 것은 단 하나. 바로 타타르인의 침입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적군이 나타났을 때 드로고는 병이 깊어 강제로 도시로 보내진다.


책을 완독했을 때 처음에 드는 생각은 허무함이다. 드로고는 "전쟁에 대한 포부"만을 기대했다. 전쟁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그는 쇠약해져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고 해산 당한다. 눈앞에 있는, 현실 세계의 기회들과 맞바꾼 결과는 병력에서의 제외였다. 청춘을 바쳐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일했고, 마침내 성공을 눈앞에 두고 퇴직을 권고당한 사람의 느낌이랄까.



"이곳에서 난 삼십 년 넘게 기다려왔어...... 많은 기회를 떠나보냈지. 삼십 년은 상당한 시간이야. 난 그 시간을 복조리 적들을 기다리는 데 쏟았네."

267쪽

두 번째는 드로고의 처절함이다. 도시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드로고는 진짜 적을 맞이한다.


실제로, 조반니 드로고를 향해 최후의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략) "용기를 내, 드로고. 이게 마지막 카드야. 군인답게 죽음을 만나러 가는 거야. (중략)" 조반니 드로고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평온하며, 운명적인 시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존재임을 깨달았다.

279쪽

한 여관에서 드로고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죽음과의 전투는 그의 머릿속에서 "그가 바랐던 전투보다 훨씬 혹독한 전투"가 된다. 드로고가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 죽어가는 과정을 전투로 묘사하는 부분은 의미에 대한 그의 처절함과 간절함을 느끼게 한다.


지금, 여기

드로고를 보고 있으면 카프카의 <문 앞에서>가 떠오른다. 시골 사람은 평생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문지기는 그 문이 오직 시골 사람을 위한 문이었다고 말한다. 드로고는 다른 길로 갈 수 있었다. 의사에게 다시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고, 전근 의뢰서를 쓸 수 있었다. 그는 남았다. <문 앞에서>와 <타타르인의 사막>은 둘 다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드로고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시골 사람이 문지기를 밀거나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은 허무주의,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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