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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y Mar 25. 2024

이터널 선샤인(2004)

★★★★★(5)

"소중한 것이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면 다시 닦아 빛내면 된다."


-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장편 영화로 기발한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여태껏 멜로 영화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요소들로 가득한 이 영화는 새로움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 작품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어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인력이 훌륭하게 작용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 빙판 위의 두 사람

 한밤중 넓은 빙판 위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나란히 누워있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 중 하나이다. 보기만 해도 낭만이 가득한 이 장면은 여러모로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시간적 배경을 밤으로, 공간적 배경을 빙판으로 설정하여 의도적으로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세상에 단 둘밖에 없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어 보다 로맨틱한 상황을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 때문에 관객들은 오직 화면 속의 두 사람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장면은 일종의 비유적인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밤과 빙판은 흑백의 대조를 이루는 데에 반해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그들의 옷을 통해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또한 차갑고 딱딱한 성질을 띠는 빙판과 달리 그들의 관계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때문에 나아가 생각해 본다면 이 장면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그들을 둘러싼 혹독하고 각박한 세상 속, 그들만의 따뜻하고 달콤한 사랑을 피워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빙판에 보이는 균열은 그러한 현실을 깨고 시작된 그들의 만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달달해 보이는 장면도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사실 그들은 심하게 다투어 헤어진 연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다면 어두운 배경은 그들의 갈등을, 차가운 빙판은 얼어붙은 그들의 사이를, 빙판 위의 균열은 금방이라도 깨질듯한 그들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암울한 배경을 등지고 함께 웃고 있는 그들은 관계의 회복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독특한 장면 전환

 이 작품에서는 여러 가지 독특한 방식으로 장면을 전환한다. 단적인 예로 서점에서 클레멘타인과 있었던 일을 설명하던 조엘이 문을 지나자 공간적 배경이 서점에서 집으로 전환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영화가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게, 혹은 그러한 편집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편집 방식을 비가시 편집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보며 인상 깊었던 건 특정 인물의 시점을 보여주는 시점 쇼트나, 컷 전환 전의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배경음을 컷 전환 후의 장면에서도 흘러나오게끔 하는 L컷 등의 비가시 편집법이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되지만 주인공인 조엘을 둘러싼 배경들은 눈에 띄게 바뀐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편집을 눈치채기 어렵게 만드는 비가시 편집법을 사용하며 누구나 눈치챌 수 있도록 배경을 바꾼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 모순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이 영화는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고, 그러한 모순을 통해 표현하는 아름다움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먼저, 소재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공상 과학 기술과 로맨스는 서로 상극처럼 느껴진다. '과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은 부드럽고 따듯한 로맨스와는 섞일 수 없을 듯 하지만 이 영화는 '기억을 지우는' 공상 과학 기술을 이용해 오히려 좋았던 추억들을 '기억해 내는' 걸 보여주며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본작의 핵심은 거꾸로 진행되는 타임라인에 있다. 작품의 초반부에서는 조엘의 기억을 지우기 시작하며 연애 후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서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없이 애틋했던 연애 초반의 서로의 모습이 비춰진다. 서로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타임라인을 역순으로 진행시키는 방식으로 표현하여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공상 과학 기술을 이용했기에 가능한 다른 멜로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타임라인의 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 간에 우리는 그 사람과 만난 시점 이후의 경험을 상대와 공유하게 된다. 상대와 만나기 이전의 경험을 상대와 하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데, 이 작품에서는 클레멘타인을 만나기 전의 조엘의 경험을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 함께 나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어린 시절이나 테이블 밑에 숨어있는 어린 시절을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함께 나누는데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런 모순적인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갈 수 없는 곳, 함께 갈 수 없는 시간이라 해도 같이 가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엘이 여러 고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함께 자신의 기억을 지우려는 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엘은 여러 난관을 자신의 애인인 클레멘타인과 함께 헤쳐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워져 가는 기억 속에서 함께 도주한 클레멘타인은 실제 클레멘타인이 아닌 조엘의 기억 속의 클레멘타인이다. 그렇기에 함께 시련을 견디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조엘 스스로 시련을 견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과 여러 경험을 할 때에 나는 실제로 그 사람일 수 없고, 이에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나의 기억 속의 상대 혹은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상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조엘의 사투 또한 혼자만의 사투이지만 동시에 둘이 함께 역경을 헤쳐나갔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 관계의 회복

 이 영화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큰 울림을 주는 장면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엘이 클레멘타인과의 첫 만남을 상기할 때에 나온다.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이 지워져 감에 따라 그녀와 처음 만났던 어느 바닷가의 집도 무너져간다. 조엘은 기억 속 클레멘타인을 향해 그 당시에 클레멘타인과 함께 남을 걸 그랬다며 후회되는 게 많다고 하는데 그녀는 그런 그를 향해 그럼 이번엔 남으라고 얘기한다. 조엘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를 전부 돌이켜보니 그 끝엔 수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있었고, 그녀는 그런 그에게 서로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한다. 이 장면은 둘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준 탁월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 매트릭스의 오마주

 실제로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에서 매트릭스를 오마주한 모습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은 혼돈스러운 현실 세계로 향하는 길, 파란약은 평온한 가상 세계에 머무는 길로 제시된다. 그러한 색의 대비를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매트릭스와 달리 현실 세계의 클레멘타인의 머리를 파란색으로, 가상 세계의 클레멘타인의 머리를 빨간색으로 설정하여 배치한 모습이 보인다. 왜냐하면 이터널 선샤인에서 중요한 세계는 '현실 세계냐 조엘의 기억 속 세계냐'가 아닌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를 아는 세계이냐 모르는 세계이냐'이기 때문이다. 클레멘타인의 머리가 파란색인 현실에선 비록 현실이라 할지라도 둘의 기억이 지워져 서로가 서로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반면, 클레멘타인의 머리가 붉은색인 조엘의 기억 속에선 비록 현실은 아니라 할지라도 서로가 서로의 연인임을 알고 있는 상태이다. 본작에서는 서로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아는 세계가 '진짜 세계'임을 매트릭스를 오마주 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마치며...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지워버리는 게 바람직한가? 우린 누구나 가슴 아픈 경험을 하며, 며칠 밤을 지새워 울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러한 상처들을 되짚어보고 돌이켜보며 발판으로 삼아 성장해 나가며 꿋꿋이 견디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우리의 무구한 마음에도 영원한 햇빛이 비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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