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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29. 2023

시련

방광 확장술 그리고 DMSO

어머니는 언론 기사를 보고 찾아 간 S 병원 명의에게 큰 희망을 걸었다.


여성 비뇨기과의 명의라 불리던 의사는 방광 내시경을 하고 나서 어머니에게 희망 적인 이야기를 했다.


 "방광 군데군데 괴양 증세가 보입니다.  방광 확장술을 하게 되면 소변 양이 늘어나고 괴양 증세도 좋아질 거예요. 지금 고통스러운 증세들이 많이 호전되실 겁니다."


증세가 좋아진다는 말에 어머니와 난 날아갈 듯 기뻐했고  고민도 없이 일정을 바로 잡았다.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야..." 어머니와 난 그렇게 말하고 믿었다.



수술 당일


난 그때 일을 하고 있었고 저녁에 시댁 제사여서 어머니 수술을 지켜볼 수 없었다.

어머니를 병원에 내려드리고 바로 일 하는 곳으로 갔다.


1시간 정도 간단히 하면 된다고 한 시술에 가까운 수술이고 앞으로 좋아질 일만 있을 거라는 생각에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 확장술은 왜 그런지 3시간이나 걸려서야 끝나 회복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이 좀 있는 명의가 아닌 어려 보이는 인턴 같은 한 의사가 , 마취에서 덜 깬 상태로 회복실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말을 한다.

 

"수술 후  소변이 수술 이전보다 힘들어지실 거고요.  앞으로 통증이 더 심해지실 거예요. 저녁에 자다가도 가끔 병원에 실려와서 소변을 빼야 할 경우도 생길 겁니다." 이 말을 던지고 갔다.


일하는 도중에  병원에서  절망에 빠져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렇게 말한 의사를 찾아 당장 전화를 걸었다.


"지금 환자를 상대로 실험하시는 건가요? ***선생님이 좋아진다고 희망적인 말만 해서 수술을  했더니 이제 와서는 그  의사는 보이지도 않고 결과가 뭐요? 더 악화된다고요? 왜 더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 미리 말을 안 했나요? 환자에게 여러 가능성을 말해주고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처음에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그래도 인턴은 죄송하다고는 했다.


나중에 제사 끝나 어머니 병원에 죽을 싸들고 뛰어갔다. 전신 마취를 했기 때문에 식사를 밤 9시 넘어서나 하셨다. 어머니는 너무 고통스러워하셨고 이전보다 더  힘들게 화장실을 써야만 했다.

아무 말 안 해도 어머니 얼굴에서 얼마나 힘든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읽어졌다.


어머니가 나중에  수술을 권한 그 명의를 만나 조용히 물어봤다.

"왜 저한테 호전될 거라고만 하시고 악화될 수도 있다는 말을 미리 안 하셨나요. 그런 중요한 말을 왜 수술 후에 그것도 처음 보는 다른 의사 통해 알려주셨나요?"

"..."

의사는 아무 말 없이 처방전만 내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방광 확장술을 누가 했는지도 의문이다.




이 날 어머니의 일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삶이 힘겹고 감당할 수 없을 시련의 말을 (의사가) 해도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자. 일단 수술 중에 죽지 않고 마취에서 깨어나게는 해줬으니..."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도 매일 성경을 읽고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려고 노력했다.


S병원 여성 비뇨기과 명의라는 사람이 수술 후 고통스러운 어머니의 울부짓임이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졌는지 그 해  5월 8일 방문을 난  잊지 못한다.


병원에 가는 길 수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병원을 찾아가고 겨우 만난 그 명의라는 사람은!

뭐가 그리 급한 듯 서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쪽 다리는 덜덜 떨면서 어머니를 상담했다.


상담이 아니라 몇 초 조롱의 시간이었다. 불쾌했던 그 기분을 지금까지 난 기억한다.


방광 확장 술 후에 더 심한 통증이 있다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처방전을 줄 테니 약 계속 드세요. 그리고 저  어버이날 식사 약속이 있어 지금 나가봐야 해요.."

실실 웃으면서  옆문으로 바로 나가버렸다.


 어머니와 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면서 너무 어이없어했다.




S병원에서 시련은 방광 확장술뿐만이 아니었다.

 처방받은 약 중에 우울증 약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어머니의 자살 충동도 시작되었다.


간질성 방광염이 극심한 고통 속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인데 질병의 원인을 찾지 못해서일까?


일부 의료진들은 정신적인 문제,  강박관염 같은 증세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항우울제 약을 처방해 줬다.


뭐든 해봐야 하니 주는 데로 약을 먹었지만 이 약으로 인해 어머니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죽을 뻔했다.

그렇다.

우울증이 없는 사람이(?) 약을 먹으면서 자살 충동이 올 수도 있었다. 적어도 어머니는 그랬다.


어머니는 항우울제 약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했다.

극심한 통증을 계속 호소하자 의사는


 "한국에는 없지만  미국에는  DMSO라고 방광에 직접 약품을 주입하는 시술이 있으니 미국을 가서 시술을 몇 번 정기적으로 받아 보세요" 결국 미국에서의 시술을 권했다.


지금은 한국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DMSO는 한국에서 시술을 받을 수 없었다.


신문에는 여성 비뇨문제를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많은 광고가 있었지만 미국에서 한방치료로 인해 받았던 고통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한국에 와서 앞 뒤 말이 달랐던 의사 때문에  불신만 생겼다. 이 병은 의사도 잘 알지 못한다. 더 이상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 미국에서 DMSO를 받아 보기 위해 어머니는 출국했다.




어머니는 미국에서 알던 간호사를 통해 여성비뇨기과 전문의인 인도계 미국 의사를 소개받았다.

미국에서 어떤 의사가 권해도 방광 확장술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어머니는 다짐하셨고 DMSO 시술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이때까지 어머니가 드신 영양제와 식이요법은 지난 글에 있습니다. 다른 추가 영양제는 다음 글에 이어서 적겠습니다.  


간질성 방광염으로 저한테 메시지 주셨던 분들이 읽고 계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메모해 가며 남긴 글들을 보고 쓰려니 시간이 생각보다 걸려요. 글이 도움이 된다면 완치까지 이어서 계속 발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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