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2학년 때 내 짝꿍 순애의 점심시간은 참 짧았다. 그녀의 식사는 맨밥과 줄줄이 비엔나소시지가 전부였는데, 조금 이상한 것은 그녀의 반찬이 슈퍼에서 파는 밀봉된 상태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순애는 비엔나의 포장비닐을 뜯고, 조리가 전혀 되지 않은 날것의 소시지를 맛있게 먹었다.
어느 날 순애는 나에게 밀봉된 소시지 하나를 수줍게 건네며, 같이 먹자고 하였다. 나는 그녀의 제의가 너무나 좋았다. 엄마가 비엔나소시지를 해주시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소시지는 언제 먹어도 맛있었고, 생으로 먹어도 맛있었으니까. 차갑고 딱딱했지만 소시지는 역시나 맛있었다. 그 뒤로 내 짝은 매일 소시지를 두 개씩 가져와 하나는 나에게 주었다.
갑자기 비가 왔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마친 나를 엄마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다행히 그날은 엄마가 일을 하지 않는 날이었다). 우산을 놓고 갔던 나와 같은 친구들이 많아서, 교문 앞은 우산을 두 개씩 들고 온 엄마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사람이 있었다. 유일하게 남자였던 순애의 아버지였다. 나는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엄마와 같이 집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순애의 아버지를 다정한 아빠라고 칭찬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짝이 왜 포장을 뜯지 않은 소시지를 반찬으로 챙겨 왔는지 알 것 같다(물론 추측이다). 그리고 왜 나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도. 하나가 웃으면 이상하게 생각하다가도, 둘이 웃으면 같이 따라 웃는 게 아이들이니까.
막걸리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비엔나소시지가 보여 하나 샀다. 물컹거리는 생소시지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니 맛이 좋다(비엔나소시지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술에 취하니 키가 작았던 순애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 짝은 지금 무얼 하며 살까? 내가 신세를 갚을 기회도 있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