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빠삐용>은 살인누명을 쓴 어느 탈옥수의 이야기를 그린 감옥 영화이다. 주인공 앙리는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나비 문신 때문에, 본명보다 ‘빠삐용’이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빠삐용’은 불어로 ‘나비’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앙리가 영화 속에서 주야장천 보여주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빠삐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인사이동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겪게 되는 스트레스 탓에 내가 좋아하던 취미들을 하지 못한 지가 오래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 소홀해졌다. 아내와의 대화도 줄어들었으며 집안일을 하는 횟수가 현격히 감소하였고, 아직 돌이 안 된 딸아이와 눈을 맞추는 시간도 충분치 못했다. 꼭 내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귀에 맴돌았고 퇴근 후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 바빴다. 자유를 찾아 탈출하고 싶었다.
속이 곪을 때로 곪자, 짜증이 밖으로 표출되었다. 어느새 나는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우리 가족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아내는 내게 생긴 좋지 않은 변화를 감지했다. 우리 부부는 장모님께 딸아이를 잠깐 맡긴 뒤 결혼 전 우리가 자주 갔었던, 내가 좋아하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아내도 나처럼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10킬로그램에 다다르는 우리 딸아이를 안고 재운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내의 무릎과 손목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앓이를 해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우리 아이를, 눈을 떼지 않고 돌본다는 것 역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내년에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그리고 아내는 복직을 하기로 했다. 이것이 그나마 공평한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고단한 일 탓에 멀어진 딸에게도 미안했다. 내년에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딸과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으로 가까운 아빠가 되려고 한다.
우리가 서로의 감옥에서 서로를 꺼내 준 것인지, 아니면 서로의 감옥에 서로를 가둔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만들 것이며, 우리의 영혼을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 것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우리의 영혼이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활공할 때를 기다리며 조금 더 웅크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