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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등석 Nov 26. 2021

꿈과 현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어려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단 한 번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뒤, 집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줄리의 월드팝스>를 시청하는 일이었다. <줄리의 월드팝스>가 끝나면 벅스에 접속하여 줄리 누나가 소개해 준 노래들을 찾았다. 언제라도 들을 수 있게 찾아 놓아야 직성이 풀렸는데, 음악들이 날아가 버릴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잠을 잘 때도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유희열의 <올 댓 뮤직>을 들었다. 귓가를 때리는 <올 댓 뮤직>의 오프닝 곡 <Philter>…. 나에게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이런 음악이 울려 퍼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음악은 그 시절 나에게 거의 유일한 낙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음악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무작정 찾아간 기타 동아리에서 음악을 배워가던 나는 결국 군대까지 미루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합창곡의 구성을 짜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법을 카피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기타를 치면 행복했고, 공연을 하면 뿌듯했다. 제대 후에는 상경하여 복학을 미룬 채 컴퓨터 음악을 배우기도 하였다. 가족들과 대학 동기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냐고 걱정이 많았다. 그만큼 음악을 좋아했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소개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 낯선 사람들이라는 그룹의 <꿈과 현실>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여러 갈래 길 그 어느 것도 정해진 길은 아무것 없어/ 지키고 싶은 너의 꿈들을 너의 세상을 얘기할 때/ 넌 얼마나 내게 커다란 위로를 주는지 넌 모르지/ 그래 넌 사람들은 모두 같은 길을 가고/ 모두가 네게 똑같은 길을 가야 한다 말해도 난 아냐/ 시작되는 그 길 앞에서 네게 난 묻고 싶어/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것 너의 꿈을 너의 세상을  


낯선사람들 2집


9번 트랙 <꿈과 현실>

                                                

 1996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희망찬 노래이다. 노랫말만 보아도 참 아름다운 노래이지 않은가? 현실을 더 우위에 놓는 사람들은 이 노래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찬용은 이런 가사를 쓸 자격이 있다고 변호하고 싶다. 그는 꿈과 희망을 입에 담고 이러한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다. 그가 지천명을 넘긴 현재까지도 자신이 부른 이 노래의 가사 말처럼, 본인이 선택한 음악이라는 길을 우직하게 걷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가 천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도 없는 내가 음악을 한다면?


 생각해보자. 만약 대학 졸업반인 내가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맙소사! 눈에 뻔하다. 내 앞에 나타날 적이 너무 많았다. 괜히 한숨 쉬시는 할머니, 힘들여서 가르쳐 놓았더니 미친 소리 한다는 아버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는 우리 엄마, 철없다며 욕하는 누나, 아연실색할 내 동생, 아무 말 없는데 괜히 얄미운 작은 고모, 그리고 나를 볼 경멸의 시선들, 내 꿈을 응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연락하지 않을 친구들, 내일이면 나를 버릴 사람들, 가벼운 인연들, 배고픔, 외로움, 고달픔, 불확실한 미래, 그 모든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또 내가「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구보씨처럼 변하면 어쩌겠는가? 찌질한 구보씨. 구보씨는 일본 동경에서 유학까지 하고 왔건만 취직도 결혼도 못한 채 늙은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스물여섯의 소설가이다. 구보씨는 어여쁜 여자와 연애를 하는 재력가인 친구를 보며 열폭하고, 친구의 애인을 상상 속에서 욕보이는 찌질함 또한 감추지 않는다. 구보씨의 비루함은 꿈을 선택한 대가이다.  


 몇 년 전, 어느 아나운서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꿈이 없는 것도 비참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잡고 있는 것도 비참하다.>라고 말했고, 발언의 적절성에 대하여 네티즌들의 설전이 이어졌다. 꿈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아나운서의 말처럼 현실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그때 음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않은 것일 뿐이지 음악을 버린 것이 아니다. 나는 취업한 이후로도 영화음악 작곡을 배웠고, 사이버대학교에서 실용음악학사 또한 취득하였으며, 디지털 앨범도 냈다(라디오에서 내가 작곡한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였다).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음악 공모전에서 상도 탔다. 지금은 내가 연주한 기타 커버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음악을 취미로라도 할 수 있으니 나의 선택에 미련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긴 하다. 언제라도 좋으니 공연을 다시 해보고 싶다. 나는 4학년 2학기 때 갑자기 취직이 결정되어 불가피하게 당시 참여해왔던 공연의 무대에 서지 못하였다. 같이 공연을 준비해왔던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했었는데(지금도 미안하다), 언젠가 그들에게 내가 먼저 연락하여, 내가 만든 무대에서 그때 못했던 공연을 다시 해보고 싶다.

 

 어찌 되었건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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