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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May 30. 2023

세 악기의 실내악... 그 후 1년(2)

내가 아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들이 저를 걱정하는 것보다 클 수는 없다.

  큰애가 10개월이 됐을 때 시집에서 분가했다. 그 후로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스마트폰도 산골 구석의 촌로들에게 모두 보급이 된 후에나 하나씩 가졌다. 아이 앞에서 최대한 스마트폰은 자제했으나,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었다. 영상 기기를 최대한 아이와 멀리하려는 우리 부부의 교육 철칙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치원, 학교 등의 교육 기관에서 이미 영상 기기와 스마트폰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이 들어와 있었다. 타고나기를 이런 장비 쪽에 재능이 있게 태어난 아들은 집에서 못하는 것을 밖에서만이라도 실컷 해보고 싶었는지, 영상 기기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등이 자신에게 주어지면 그것을 최대한도로 활용하려는 게 습이 베어버렸던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컴퓨터 수강 전단지를 들고 와서 이 수업을 꼭 받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의 기본적인 지식을 익혔던 아이는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홀로 찾아서 방송 장비에 대한 기술을 익혀갔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성인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음향 관련 특강에 들어가서 수강을 했고, 엄마 눈을 피해 유튜브 등의 강의로 영상 편집, 음향 등등의 방송 기술을 배워갔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컴퓨터나 방송 등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이 아이에게 이런저런 일을 맡기곤 했고, 이를 통해 더더욱 소질이 개발되었다. 특히 코로나 시국의 원격 수업은 아이의 이런 소질을 펼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 시기기도 했다. 아들이 만든 ppt나 영상은 정말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훌륭했다. 전문가가 봐도 전문가 수준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아이는 이런 재능을 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들었던 설민석 선생님의 4.3 사건 관련 영상은 아이의 심장을 불태웠다. 당시 나도 전쟁체험담 연구 논문을 한참 쓰면서 전쟁 전후 시기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을 때였는데, 내가 자료를 보던 중 시청하던 설민석의 관련 영상을 같이 보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강의 시청 후 아이는 설민석의 역사책을 사달라고 하여 관련 역사책, 만화책을 모두 사주었다. 일찍이 우리 아픈 현대사에 눈을 뜬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공정과 공의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다시 헌법>> 혹은 <<내가 검찰을 그만둔 이유>>와 같이 성인들이 읽는 두툼한 책을 초등학생이 다 읽어가면서, 아이는 우리 정치의 구조적 부패를 풍자하고 그런 영상들을 찾아서 웃는 것을 낙으로 삼곤 했다.

  논증을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나 발표, 토론을 강의하는 엄마 밑에서 늘 논거를 토대로 논리적으로 말하도록 훈련받은 아이는 자기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고, 학교 선생님도 인정하는 토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즉 세상 돌아가는 시사문제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 그 역할을 올바로 하는 방송가, 따라서 그 표현의 중심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프로듀싱하는 PD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컴퓨터를 잘하니 컴퓨터 전문 연구가가 되고 싶어 할 거라는 내 생각은 출발점이 달랐던 것이다. 이 아이는 과학고가 적성이 아닌 것이다. 앉아서 연구하는 연구가가 아니라 직접 뛰어들어 바꾸려는 행동가인 것이다. 




   중 2가 되면서 과학고 진학 계획은 일단 스톱을 시켰다. 학원에서 짜준 공부 계획은 애초부터 우리 아이에겐 불가능한 공부 방법이었다. 그 학원에서 그렇게 과학고를 푸시하는 부모나 아이들이 원하는 곳이 의대라고 한다. 과학고는 애초부터 의대 진학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과학고 출신들이 반수를 하든 학적을 포기하든 해서 의대 진학을 많이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나나 우리 아이는 애초부터 의대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의대를 부르짖는 논리에는 크게 휘둘리진 않았다. 단 컴퓨터 연구가가 되고 싶은가 했던 나의 예측과는 달리 아이는 PD를 원했다. PD가 되려는데 과학고 대비를 위한 그 힘든 D동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기에 일단 집 근처의 학원으로 옮겼다. 그래도 과고 준비를 해보고 그만두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도 나도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집에서는 침대에서 나오질 않는 아이, 방 꼴이 엉망진창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런 나를 상대하려 하지도 않는 아이를 보면서 늘 부딪치는 나와 큰아이. 밖에서는 어른들이 모두 다 예의 바르고 착하다고 칭찬하는 아들은 내 앞에서만 저런다. 정말 살기 싫다.

  진실로 진실로 이 아이는 내 모든 것이었다. 처음이었다. 그런 사랑은. 내 모든 것이었다. 둘만의 추억도 얼마나 많았던가! 이 아이와 단 둘이서 함께 했던 시간들, 옹알이, 뒤집기, 엉금엉금 기던 아이의 첫걸음을 떼던 때, 말할 때, 유치원에 갔을 때, 학교 갔을 때 등등. 이 아이의 모든 첫걸음이 다 나의 첫걸음이었건만!

  그리고 지금의 이 아들의 사춘기 역시 내겐 처음 겪는 일인 것이다. 처음이라 낯설고, 한 번 밖에 없는 거라 두려운 너. 난 그런 네 앞에서 내가 더 힘들다고 너를 쥐어박고 있었으니 네가 나와 말을 하고 싶었겠니!

  



  학교 선배들 중 몇 명이 서울방송고에 진학을 했는데 거기가 방송을 진로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다고 들었다는 네게, 특성화고 쪽은 아예 말도 안 꺼냈던 내 편협함을 이제야 뉘우친다. 후에 네게 방송고에 대하여 물었더니, 상처를 많이 받았던지 생각 안 한다던 네게, 엄마의 편협했던 그때의 태도를 사과하고 물어봤더니 쑥스러운 듯 소개 영상을 보여준 네가 방송 쪽의 일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열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단다. 

  생애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본 너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잘하는 편도 아니었지. 네가 과고를 준비한다면서 학원을 다니고, 그 과정 중에서 나와 마찰이 많았던 것을 알던 교회 큰사모님은 내게 너의 중간고사 성적을 물었지. 

  "내게 사모님(나) 쓰러질 얘기 해줄까?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때까지 간다!"

  쓰러질 얘기를 쓰러지라고 하는 건가? 도대체 저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뭘까? 내가 교회 사모님이라고 어디 가서 말 못 할 고민이라 편하게 얘기한 나의 마음을 모두 다 거둬버리고 싶었던 저 이상한 말은 어찌 보면 내가 큰 애를 향해했던 폭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아들의 이미지에 갇혀 엄친아처럼 키우고자 내가 내 아들을 잡았던 것은 아닐까? 과학고든 특성화고든 우리 아이가 사랑하는 진로를 함께 고민했던 것이 아니라,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스펙을 아이에게 강요한 것은 아닐까? 뭘 모르고 지껄이는 기성세대의 꼰대적인 시선에서 우리 아이를 어떻게든 잘 포장하고파서 우리 아이의 맘을 외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바로 저런 자세로 너를 봤던 것은 아닐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너를 너무나도 외롭게 해서. 네 맘 쉴 곳, 네 맘 둘 곳 마련해주지 못한 채로 너를 꼰대들의 값싼 눈들과 입들에 도매급으로 팔아넘기려 했던 이 엄마의 과오를 정말 뼈저리게 반성한다. 정말 미안하다. 

  언젠가 네가 그랬지? PD가 되려면 방송고시를 봐야 한다던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면서요? 너는 그래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지. 현재 너의 성적으로는 그곳에 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넌 꼭 가고 싶지. 할 말 제대로 하는 뉴스를 만드는 PD. 그런데 현재의 너는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으니 네가 얼마나 절망스럽겠니? 

  내가 너를 걱정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는 너를 걱정됐던 거지. 홀로 영화도 보고 놀이공원도 다니면서, 홀로 여행을 다니면서 네 맘을 성찰하고픈 너를 이제야 이해했단다. 내가 너를 걱정한다는 말은 적어도 지금의 네 앞에서 내가 할 소리가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어. 지금 네게 공부니 시간낭비니 방청소니 어쩌고 저쩌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 너를 불안하게 만드는 현재의 그 문제를. 넘사벽처럼 떡하니 버티고 섰는 그 위압감. 말로 표현은 못하겠어서 더욱 답답하지. 

  어차피 학벌 사회에서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한참 뒤처진 것 같이 느껴지고, 그 격차는 도저히 좁힐 수 없을 것 같고, 네게 간절한 꿈은 그 격차를 좁혀야지만 가능할 것 같고, 점점 작아지는 너를 파고드는 건. 어른들의 알지도 못하고 지껄여대는 잡소리들. 엄마의 불만 등등.

  잠시 놓아도 괜찮아. 엄마도 이젠 네 편이 돼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게. 돌이켜 보니 너는 정말 잘했어. 네가 원래 착해서 엄마의 모든 걸 다 받아주는 너의 아빠처럼 너도 엄마를 무조건 수용하고 수긍했었지. 그렇지만 엄마도 잘못했던 게 많았어. 아빠는 아직까지도 엄마를 다 수용해 주지만, 너라도 그걸 틀어서 엄마의 못난 점을 발견하게 해 줬어. 너는 공정하고 정당한 것을 좋아하는 너의 성향처럼 너는 정당하게 항의를 했고, 옳은 지적이었어. 더 이상 엄마를 모양 빠지는 기성세대의 꼰대로 늙지 않게 해 준 고마운 항의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엄마는 이제부터 헬로키티 엄마가 될 거야. 입 없이 귀만 쫑긋 세우고 네 말을 듣는 엄마. 이젠 믿어줄 수 있겠니? 엄마가 실수하면 또 넌 너의 방법으로 항의를 해다오. 엄마는 너의 항의에 대해서 만큼은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절대적 신뢰감이 이제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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