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전생에 이순신 장군
사춘기도 모르고 지났던 내가 하필이면 갱년기를 이렇게나 겪었을까? 지난 연간에 겪었던 이 악기(惡期: 나쁜 시기)의 첫 시그널은 너무 이른 갱년기를 겪어야 했던 내 몸에서 시작되었다. 이른 갱년기라 함은 이른 노화를 의미함이었고, 이른 노화에 대한 화살이 모두 남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편의 문제 해결 능력을 문제 삼았지만, 지난 15년간의 결혼 생활 중 문제 해결의 중심에 늘 남편이 있었다. 단지 생색을 내지 않았을 뿐. 나 혼자라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굵직굵직한 일들은 모두 남편이 해결했다. 다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남편은 늘 그랬다. 온유했지만 강했다.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강한 단호함으로 무장한 그 안쪽의 보드라운 곳에 늘 나를 두었다. 나에겐 늘 온유했고, 늘 부드러웠고, 자상했다. 그래서 내가 오만했다.
그래서 내가 마음껏 갱년기라는 이유를 들어 갑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내가 사춘기를 겪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겪지 못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받아주는 분이 아니셨다. 늘 엄했다. 어린 시절 나의 가족 중에는 나의 예민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내가 사춘기라고 해서 함부로 갑질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갱년기 갑질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받아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난 맘대로 성질을 부렸다. 나도 알았다. 내가 억지 부리는 것을. 내가 이 갱년기나 권태기를 아무렇지 않게 토로하며, 성깔을 있는 대로 부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받아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컷 해대고 나니 미안했고, 미안한 맘이 들고 보니, 정신이 차려졌고. 언제나 그 자리에 온유하고 부드럽게 나를 지키고 있었던 나의 남편이 진심으로 고마워지면서 나의 갱년기도 권태기도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러면서 아이의 사춘기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이제야 정신이 든다. 우리 부부가 15년을 살면서 그간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요 1~2년 어간에 겪었던 나의 갱년기와 권태기만큼 큰 위기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가 그간 비교적 금슬이 좋았던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내가 남편에게 남자니까 돈 벌어오라고 바가지 긁지 않았고, 남편이 내게 여자니까 가사와 육아를 다 내게 하라고 떠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담도 함께 나누었고, 가사와 육아 부담도 함께 했다. 내가 갱년기에 접어들어 심각한 감정적 불안을 겪자, 남편은 오히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 주었다. 주말부부를 하며 떨어져 있는 1여 년 동안, 가사와 육아를 남편은 오로지 전담하며 나에게 쉼을 주었다.
내가 욕하고 조롱해도, 소리 지르고 짜증 부려도, 이혼을 하니 삼혼을 하니 하며 긁어대도 남편은 늘 한결같았다. 남편은 정말 나를 사랑했다.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생활 그대로가 사랑이었고 실천하는 사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물었던 내게, "사랑은 오래 참는 거야."라고 말하는 남편.
고맙다. 그래서 내가 이 모진 시기를 잘 이겨내고, 우뚝 설 수 있었어. 물속 저 깊은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나왔던 모든 악담과 악덕은 한 어간의 "지랄"로. 그 "지랄"도 실컷 해보니 별 것 없고 지겹더라. 그냥 힘을 빼고 저 아래 바닥까지 쑤욱 빠져들어보니 물속을 바로 볼 수 있었지. 그리고 물의 바닥을 밟은 거야. 이젠 힘차게 뛰어올라 물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 같아. 다 당신이 인내해 준 덕이야.
난 평소 농담처럼 남편에게 말하곤 한다.
"당신이 나 같은 부인을 왜 만난 줄 알아? 당신은 전생에 이순신 장군이어서 그런 거야. 나라 정도는 구해줘야 나 같은 멋진 부인을 만날 수 있는 거라고."
피식 웃으며 자신이 나라 구한 이순신이 맞다는 남편. 가족 중 누가 말한다.
"근데 전생에 이순신 장군이었다고 해서, 이생에 남자로 태어나라는 법은 없잖아요? 엄마가 이순신 장군이었을 수도 있어요."
애들 눈에도 아빠가 엄마한테 더 잘하는 게 보이나 보다. 아빠가 엄마의 갱년기 갑질을 인내하고, 엄마의 사나운 폭언을 보듬고, 엄마에게 늘 부드럽고 자상하기만 한 걸 보면 아빠의 아내복보다는 엄마의 남편복이 더 크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래,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이렇게 좋은 남편을 얻었나 보다. 내가 전생에 이순신 장군이었다는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남편에게 불만이 성큼성큼 올라올 때 '내 남편은 전생에 이순신 장군'이라고 생각하면 맘이 누그러진다. 내가 너무 남편에게 못 되게 굴었다고 자책할 때 '내가 전생에 이순신 장군'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덜 미안하다. 그래 우리 부부끼리는 서로가 전생에 나라 구한 이순신 장군이라 생각하자. 기독교인인 우리 가족이 전생을 믿진 않지만, 이러한 농담 같은 생각들은 서로 못 참을 게 없고, 용서 안 될 게 없게 한다. 나라를 구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불만은 아무것도 아닐지니! 내 갱년기와 권태기를 극복하게 해 준 나라 구한 이순신 장군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