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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관 Dec 28. 2024

성인 소설 쓰던 제가 청소년 소설
출판했습니다. 이렇게

[남극 펭귄 생포 작전]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선정(블루픽션-85)

늦은 나이에 알게 된 타고난 재능


나는 늦은 마흔 살에 남들보다 타고난 글재주가 있다는 걸 알았다. 너무 늦게 안 것 같아서 억울함이 밀려왔다. 중고등학교 때 나의 타고난 글재주를 발견했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어쩌면 12월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갔었을 수도.
 
 아들이 대학 진로를 고민할 때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마흔에 발견한 나의 타고난 재능 이야기를 해 주면서, '남들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가 즐거운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들이 정색하며 대꾸했다.
 
 "아빠처럼 타고난 재능을 알고 있다면 뭐가 고민이겠어."

"학교에서 적성 검사 같은 거 안 해?"
 문득 궁금했다. 우리 때와는 달리 지금 교육과정에 자기 주도 학습 등 자신이 뭐를 잘하는지 알 기회가 많고, 무엇보다도 적성 검사를 하는 거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딴 게 어딨어. 좋은 대학 가면 최고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40여 년이 흘렀지만, 변한 게 없다는 걸 말이다. 변한 거라곤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나 어릴 때는 사람들이 온통 판검사만 되면 인생이 비단길인 것처럼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의사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모든 생명체에는 타고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두더지에겐 땅을 잘 파는 능력이, 사자에겐 날카로운 이빨이, 토끼는 잘 도망칠 수 있는 길고 튼튼한 뒷다리가, 사슴이 재빠르게 달리는 능력이 없었다면 38억 년 진화 과정에서 사라졌다.
 
 인간도 생명체다. 당연히 인간 개개인에게도 탁월한 능력 하나는 반드시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감수성이 예민하여 피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의대에 가면 평생 후회하는 것처럼, 사슴이 토끼를 잡아먹고, 사자가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아무리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도, 토끼를 잡아먹는 사슴이 행복할 수 없다. 풀을 뜯어먹는 사자가 순간의 행복은 느낄 수 있겠지만, 끝내는 불행해진다는 걸 나는 직접 경험하고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대한민국 50대 평범한 남자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 속 인물들을 똑같이 그릴 정도로 손재주가 있던 친구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자신의 재능을 버리고 법무사가 되어 큰 창문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술만 마시면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한숨만 내쉰다. 


그리고 하늘의 별자리를 다 외우고 다니던 친구는 펀드 매니저가 되어 6대의 모니터가 그를 감싼 사무실에서 하루 15시간을 일한다. 법무사 친구는 이따금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지만, 펀드 매니저 친구는 40대 중반에 그 과거마저 기억에서 지워버렸다고 하면서 어린 시절 떠올리는 걸 질색했다. 하지만 절대자가 준 타고난 재능을 하찮은 인간이 지울 수 있을까. 천부당만부당하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20대에는 모든 게 혼란스럽고, 타인의 욕망에 자신의 욕망이 쉽게 투영되어 자신의 본래면목을 자주 잃어버리지만, 어느 정도 살다 보면 안다. 어린 시절 연필을 쥐자마자 글씨 대신 그림을 그렸던 그때가, 어두운 시골 밤의 두려움을 이길 정도로 별이 좋았단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걸 말이다. 타고난 재능대로 살던 유일한 시기였기에 가장 행복한 건 당연지사였다는 걸 깨닫고, 비록 가난하더라도 다시 그림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살고 싶지만,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생은 라이브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모두가 어설프다. 살아도 살아도 막막하고 답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내 인생은 한 번 뿐이지만 남의 살아온 삶을 보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 경험의 가장 좋은 방법이 소설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는 아들에게 보여주고자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을 쓰게 되었다. 독수리가 창공을 날고, 사자가 사슴을 사냥하고, 사슴은 초원을 무리 지어 뛰어다니며 싱싱한 풀을 뜯어먹듯이 아들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왜 하필 펭귄인가?
 
 4년 전이었다. 소설에 쓰려고 펭귄 자료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오동통한 몸, 느릿느릿한 걸음, 사람을 만나도 도망가지 않는 친화적이고 온화한 성격. 그리고 수만 마리씩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남극 펭귄 생포 작전 30쪽>'


 그때 생각했다. 이런 펭귄이야말로 인류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신념으로 가득한 어느 노인과 주변의 여건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년을 말이다.   대충 줄거리를 작성하여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들은 줄거리를 보자마자 기발한 발상이라고 하면서 꼭 완성해보라고 했다. 나는 아들의 응원을 받아 곧바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수문학만 하던 나에게 남극은커녕 이웃 나라 가는 것도 한참 걸렸다. 글 쓰는 건 탄광 막장일보다 더 노동의 강도가 세다. 당연히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작가가 될 수 없다. 남극 가는 길을 잃은 나는 흥미를 잃고 포기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픽사의 스토리텔링 기법에 관한 글을 읽고, 다시금 도전했다.
 
 그렇게 만든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상의 나라인 서칸쿠공화국의 영웅 전사로 살아온 노인 K1은 4년 동안 준비한 일생일대의 마지막 작전인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준비한다. 평등과 공평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누구나 행복한 나라가 된 공화국의 유일한 오점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펭귄을 잡아와 대량 사육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작전이다. 이 작전에 우연히 공화국에서 기생충이라고 불리는 소년 바탈과 K1을 죽이고자 남극까지 따라온 이슬람인 샤이마가 함께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남극에 도착하지만, 펭귄의 본래 모습과 대면하면서 밀려온 절망과 반전 등 그들의 모험은 급변하는 해류처럼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바탈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다.


 주인공 바탈과 함께 남극 주변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동안 한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모든 글쓰기가 그렇듯이 내가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함을 늘 곁에 두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은 불안함이 더 했다. 처음 써보는 청소년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아동 청소년 전문 출판사 비룡소


 작품을 완성하여 청소년 소설 공모전에 응모했다. 초짜가 비벼볼 그런 공모전이라면 모를까, 워낙 명성이 자자한 공모전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공모전 담당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공모전에는 탈락했지만, 내 작품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공모전 탈락 작품을 공모전 주최 측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이다. 삼사 위원 중 한 명이었던 구병모 작가님의 호평과 출판사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검토한 끝에 출판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출판사에서 파격적 행보를 보인 건 청소년 심사단 100명이 압도적 지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청소년 심사단 심사평 일부



 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한 건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이 비룡소 블루픽션 시리즈 85번째 작품에 등재되었다는 점이다. 블루픽션 시리즈로는 영원한 SF의 고전 '기억전달자(로이스 로리)', 2차 대전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명작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존 보인)', 인간 복제를 다룬 소설의 원조이며 SF의 걸작 '전갈의 아이(낸시 파머), 10살부터 100살까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 최근작 '순례 주택(유은실) 등의 명작들이 즐비하다.
 
 이런 시리즈에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이 포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블루픽션 시리즈



인류의 영원한 과제 '요즘 애들'과 '꼰대'의 소통
 
 인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었'다. 기원전 8세기 신들의 계보 저자 헤시오도스는 '지금의 청년들은 지나치게 약삭빠르고 규율을 참지 못한다.' 고 했으며,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는 '요즘 아이들은 버릇 없다.'고 일갈했다. 서양뿐만 아니다. 기원전 3세기에 쓰인 한비자에는 '지금 덜떨어진 젊은 녀석이 있어'라고 적혀있단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어떤 기성세대는 꼰대로 불릴 것이고, 어떤 젊은이는 영원히 버릇이 없게 여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야기를 만들어 세대와 세대 간 지혜를 축적했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청년 세대가 보기에는 대부분 기성세대가 꼰대 같겠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따금 존경할 만한 걸 발견한다. 나도 젊었을 때 그랬다. 어른들 잔소리가 싫었지만, 이따금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을 주는 작품을 고전 명작이라고 하며, 이런 말을 남긴 분을 성인(聖人)이라고 한다.
 
 나는 성인(聖人)도 아니고, 고전 명작을 남길 그런 작가도 아니다. 진작에 내 타고난 소질인 글쓰기를 알았다면 명작을 남길 수도 있었겠지만,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다. 명작을 남기는 건 다음 생으로 미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 글을 읽고, 나처럼 늦은 나이에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무언지 모르고 돈과 명예만 쫓다가 삶을 마감하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도록.
 
 작품 속 주인공(바탈)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소중한 능력을 찾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지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멋진 삶을 사는 청춘이 이 소설을 읽고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작가로서 더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무엇보다도 글 쓰는 내내 행복했다. 그 행복이 글을 읽는 독자도 느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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