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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린 May 26. 2022

깜빡이는 커서처럼 기억은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한다

내 유년의 윗목

 고사리 손으로 내 이름 끝 글자를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나의 어린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ㄹ‘이 특히 어려웠었다. ’ㄹ’을 그리다가 언제 끝낼지 몰라 본의 아니게 ‘弓’을 쓰기도 하고, ‘ㄹ’에 익숙해질 무렵 잘 쓰던 ‘남’이 갑자기 ‘나ㅁ’이 되는 때도 있지만 결국 이름 쓰기에 성공한다. 집중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내 이름 석자 쓰기에 다시 도전할 즈음 갑자기 동생이 바지에 실례를 해서 화장실에서 엄마가 우는 동생을 달래 가며 씻기는 소리가 나의 최초의 감각이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니 머릿속은 초기화된 듯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에 잠겨 머릿속이 뿌연 채 버릇처럼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앞에 앉아있던 친구 둘은 사뭇 놀라고도 의심하는 얼굴로 그게 그렇게 자세히 기억나? 하고 묻는다. 나는 흠칫하며 그러게.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과거의 기억에서 서서히 멀어지며 다시 현재에 묻어나려 애쓴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은 느렸고 내 신발 뒤축엔 어린 나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었다.  


 나에게 나의 유년이란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최초의 감각, 두 번째 감각, 그 이후의 감각들까지도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뇌리에 강하게 저장되어 있다.

커서가 깜빡인다. 무언가 토해내고 싶은데 쓸 말이 없다. 아니, 많다. 깜빡이는 커서처럼 내 첫 기억은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한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수영복을 처음 입었을 때의 것이다. 노란색 바탕에 빨간 체리가 군데군데 그려져 있는 예쁜 수영복. 동생과 그것을 서로 자기가 입겠노라며 싸우다가 한 명은 머리에 수모만을, 한 명은 내복 위에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채 둘 다 입이 댓 발 나온 그 풍경. 딸은 둘인데 수영복은 하나였으니 평화가 찾아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몰랐다. 맨살에 수영복을 입고 바닷물에 닿는다는 느낌이 얼마나 꺼림칙한 것인지 말이다. 동생보다 14개월 앞서 태어나 당당히 해변이라는 실전에서 수영복을 입는 권리를 누린 나는 첫 바닷물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 폴리에스터라는 생경한 소재의 미끌거림과 그것이 물에 젖었을 때 몸에 달라붙어 몸을 조여 오는 요상하고도 낯선 감촉. 생각보다 강한 힘으로 다가오는 차가운 파도. 그리고 그 파도에 뜨거운 모래 쪽으로 밀려나는 포동한 나의 몸. 미역같이 생긴 해조류가 발을 휘감는 낯선 감각.


 나는 깜짝 놀라고 만 것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이란 것은 죄다 별로였다. 나는 너무 놀라 멍하니 있다가 뒤따라오는 한기도 무시하고는 과감하게 그 수영복을 벗어던지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를 향해 ‘왜 이거 미리 안 얘기해줬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감촉이잖아’를 담은 눈빛으로 엉엉 울면서 잘 벗겨지지도 않는 수영복을 벗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파수가 안 맞았는지 엄마는 내 텔레파시를 잘못 해석하곤 말았다. 엄마는 ‘에고... 부끄럽게 여기에서 빨가벗으면 안 돼!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체리 무늬 수영복이잖아.’로 나를 달래러 들었다. 체리 할아버지가 와도 이미 나는 빈정이 상해 돌아앉을 판인데 이게 무슨 말이람. 그때 나는 알몸이 된다는 수치심 반, 그럼에도 이 갑갑함에서 탈출해야겠다는 간절함 반으로 고민하느라 바빴다. 지금 다시 엄마의 말을 기억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야속하다. 4살 아이에게 그 말이 통할 일인가. 나는 ‘엄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고 말은 못하고(나이의 한계로 말빨 부족) 원망이 그득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빠는 이 광경이 웃기는지 나를 놀리느라 바빴다. 동생은 언니가 그토록 원하던 체리 무늬 노란 수영복을 입고도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나의 땡깡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의 첫 해변 데뷔는 최악이었다.





 동생과 나의 사이는 우리 동네에서 남씨자매 잘 지낸다고 소문날 정도로 살가운 편에 속했다. 부모님이 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중 하나는 너는 항상 어린이집 다녀오던 동생을 아파트 창가에서 기다리다가 동생이 멀리서 오는 모습이 보이면 까치발을 서서 동생 이름을 그리도 불렀다는 말이었다. 그럼 동생은 강아지마냥 발발거리며 뛰어오곤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동생을 잘 보살피는 모범적인 언니같지만 나는 그런 아이기도, 그렇지 못한 아이기도 했다. 사실 동생이 없었으면 큰일 날뻔한 아이였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동생. 동생이 생기면 첫째는 후처를 들인 본처마냥 샘을 낸다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런 것이 없었다. 세상 귀엽게 생긴 내 동생을 인형마냥 꼭 붙들고 다녔다.


 또래라고는 동생이 전부였던 내 세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동네 아파트 어린이집을 가면서부터였다. 뭣도 모르고 부족한 아침잠에 애꾸눈을 한 채 엄마 손 잡고 간 곳은 바로 어린이집. 거기서부터 나의 험난한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영문을 모른 채 낯선 곳에서 엄마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41개월 아이는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린이집 선생님, 부모님 모두 적응 기간이겠거니 하고 나의 엄청난 생떼를 인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무조건 승리하는 줄다리기였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그곳에 곱게 맡겨질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나도 울다 지치고, 어른들도 달래다 지친 그런 날이었다. 나는 그냥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은 내가 사물함을 보고 있는 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어린이집에는 아이들 사물함 이름표를 다양한 동물 캐릭터로 꾸며두었는데, 내 몫은 공룡이었다. 나는 그 공룡에 아무 감정이 없었다. 왜냐. 나는 그것을 내 사물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내 몫의 사물함이 배정된다는 것은 이제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겠다는 나의 항복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어린이집 등록으로 주어지는 사물함부터 거부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은 혹시 말이 안 통하는 내가 어린이집 입장을 거부하는 이유가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나 사슴같은 동물로 내 이름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님. 내일 제가 00이(토끼이름표 주인)에게 잘 말해서 예린이 이름표 바꿔둘게요. 그럼 예린이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어른들의 모종의 거래는 다음날 나의 화산같은 분노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니, 뭐라고! 내가 시위하는 이유가 고작 공룡 이름표 때문이라고! 아니야! 나는 그런 어린애같은 이유로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는 게 아니야! 나는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있는 게 좋아! 저런 코흘리개들과 오전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싫어! 00이는 뭔 죄야! 내가 오냐 하고 토끼 이름표를 받아들일 줄 알았어? 공룡도, 토끼도, 어린이집도, 엄마도 싫어!


 결국 엄마가 SOS를 친 은 27개월의 내 동생이었다. 언니가 자리보전하고 누웠다는 소식에 동생이 어린이집으로 급파되었다. 어린이집 등원 거부 사태는 동생이 당분간 먼저 등원하여 어린이집의 동태를 살핀 후 언니와 함께 등원해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동생이 팔자에도 없던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 나는 아파트 창가에서 동생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는 것으로 보아 뭐 잘 다닌 모양이다.







 지금 돌아보니 내 유년은 예민함 그 자체였다. 그때는, 내가 어릴 적 살던 서울 집에 허약한 마음 하나를 두고 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 허약한 마음이 숨기고 싶은 파편이 되어 20년 넘게 언어의 외피를 써보지 못한 채 내 삶의 궤도를 떠돌아다니리란 것도, 그때의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나라는 어린이 덕분에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 자신보다 어른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은 구간이다.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수정할 수도, 지어낼 수도, 마음대로 잊을 수도 없다.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시차는 추억을 더 애틋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이제는 세상이 멋진 집이라고 작은 예린이를 안심시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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