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졸업하고, 감사하게도 바로 취업을 했다.
덕분에 앞만 보고 달렸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하지만 경쟁 속에서 일과 사람에 지쳐 삶이 고단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나의 20대는 이제 끝이구나. 서글펐다.
유럽여행 한번 가본 적 없었지만, 그냥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이때가 아니면 평생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아일랜드행 티켓을 끊었다.
특별한 계획도, 거창한 목표도 없었다.
다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그 해 여름, 이듬해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과 어학원 등록서의 존재도 잊은 채,
바쁜 회사일에 묻혀 준비할 새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정신 차려보니 출국일이 다가왔고, 나는 제대로 짐도 싸지 못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제까지 회사에 있던 내가, 오늘은 아일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영화 <원스>의 몇 장면 정도였다.
그렇게 무모하게 더블린 공항에 도착했고, 이제는 말 그대로 실전이었다.
서툰 영어로 택시 기사와 몇 마디 주고받으며 향한 곳은 홈스테이 가정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에메랄드색 문을 가진 2층 집, 짧은 커트 머리의 아일랜드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던 순간,
거실을 길게 비추던 따뜻한 햇살, 식탁 위에 올려진 밀크티와 염소 치즈 토스트.
포근했다.
좋은 홈스테이를 만나는 것은 복이라고들 했는데, 나는 첫 순간부터 잭팟을 맞은 듯했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다 내 나이를 물어보셨는데,
그때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나는 30살이었겠지만, 아일랜드에서는 28살이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31살이 되어있었고, 내 인생의 달력 속에는 놀랍게도 "30"이라는 숫자가 사라져 있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은 무모했지만 값진 선택이었다.
그날 티켓을 끊지 않았더라면, 그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은 무모하게 저질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인가 생각만 하고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한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유럽에 간 적도 없지만 무작정 살아보겠다고 도전한 나처럼.
이 책은 그렇게 30살이 사라진 나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그 공백이 어떤 경험으로 채워졌는지, 앞으로 차근히 들려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