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영어를 좀 하는 줄 알았다

by YOROJI

토종 한국인

특별할 것 없이, 평생을 한국에서 자랐다.

영어는 그저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과목 중에 하나였다.

어린 시절 ECC 어학원에 다녔고, 조금 더 크자 윤선생 영어교실을 하며 자랐다.

학창 시절 내내 영어는 교과 과정 속에 있었고, 취업 준비를 하며 Opic 시험도 쳤다.

돌이켜보면 영어를 접할 기회는 정말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영어를 '좀' 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더블린 마트에서 처음 마주한 현실 영어

현실 속 영어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평생 배웠던 영어는 잘 다듬어진, 듣기 편한 미국식 발음이었지만, 실전에서는 억양도 속도도 전혀 달랐다.

공항 첫 택시기사, 홈스테이 가족들은 내가 외국인이니까 나름 배려한 영어를 썼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트에서 캐셔 아줌마가 던진 짧은 한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Do you need a bag?"

아주 간단한 문장이었는데, 세 번이나 못 알아듣고 결국 손짓으로 의미를 짐작해야 했다.

빠르고 강력했고 처음 들어보는 억양이었다.

나는 그날 바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인터뷰식 레벨 테스트

사실 유학을 처음 결심했을 때, 영어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장기간 유럽 여행을 위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 어학원 비자였고, 아일랜드는 적당한 선택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했지만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나니,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간 첫날 아일랜드 엄마가 걸어서 학원에 데려다주셨고, 나는 레벨테스트를 보게 되었다.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다행히 선생님이랑 가볍게 대화하는 간단한 테스트였다.

다행히 선생님들의 발음은 비교적 부드러웠고, 대화는 평소 실력대로 무난히 해냈다.

학원 전체 레벨로 보면 intermediate 정도의 반에 들어갔다.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첫 수업

레벨테스트 이후 바로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호명된 반에 가서 자리 잡았는데, 열두 명 남짓한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탈리아, 브라질, 터키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 뿐. 게다가 내가 학기 중간에 합류한 터라 이미 다들 친해 보였다.

선생님이 내 소개를 부탁하자, 긴장한 탓에 입이 굳어버렸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고,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횡설수설했다.

다들 유창하게 대화하는데, 나만 유난히 서툴렀다.

순간,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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