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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한긍정윤쌤 Mar 29. 2024

사실 말야, 내가 말야,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변명은 아무리 고급스러워도 구차하다.

그렇다. 사실 이 연재북은 원래대로라면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되었어야 한다. 지난주 화요일에, 미루고 미루던 브런치 연재북을 두 권 시작했다. 매거진으로 썼던 글을 하나의 연재북으로 기획하고, 새로 만든 연재북도 사부작사부작 써두었던 목차와 소개 글을 써서 올렸다. 자, 그리고 나의 연재 계획은 ‘다음 주부터!’ 였던 것이다.

     

지난 금요일, <고급스러운 변명> 연재북에 글을 후딱 써서 올리라는 브런치의 독촉은 그래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아니, 제가, 당장 이번 주부터 쓰려던 게 아니었거든요. 저는 연재북을 새로 만들었고, 다음 주부터 연재 시작! 이렇게 마음먹은 거였거든요. 금요일은 꽤 차분하게 독촉을 무시할 수 있었다. 흥, 나는 내 계획대로 다음 주부터 쓸 거라고요! 그러나 브런치는 참 집요하게 다정하더라. 토요일 오전, 브런치는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며 글을 내놓으라 하였다. 그때의 마음은 뭐랄까. 빚을 진 것도 없는데 돈을 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대상도 없이 왠지 미안하고 놓친 것도 없이 괜히 찝찝하고 풀어낼 방법도 모른 채 화가 났다.



뭘? 어째서? 누구한테?




뭐긴 뭐야,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지. 

어쩌긴 어째서야, 허술하게 굴었던 게 멋쩍어 그렇지. 

누구한테 긴 누구한테야, 늘 변명거리만 짜내야 하는 나 자신한테지.     


일상이 이런 식이다. 뭘 제대로 반듯하게 해 내기가 어렵다. 똑 부러지는 멋진 여성인 척 하지만, 속내는 전혀 아니올시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 부리다 기회를 다 날려버리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 시간도 다 날려버리고, 잘하려고 힘을 너무 주다가 시작도 전에 지레 지쳐 자빠지기 일쑤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바쁘게 사는 건 사실이다. 학생들 가르치는 본업에, 영어며 코칭이며 공부에, 아이들도 키우고, 연세 드시며 다시 아이가 되어가는 울 엄마도 챙기다 보면, 일주일이 눈 깜빡할 새에 날아가 버리곤 한다. 그래서일까. 바쁜데 바쁜 느낌이 들지 않고. 바쁘게 살았다는 후련함과 뿌듯함이 남지 않고. 그냥 모두 다 날려버린 기분으로. 똥 싸고 덜 닦고 나온 기분으로.     


일단, 계획! 계획이 바로 문제이다. 내 계획은 충분한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일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정말 허황되고 장황하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 만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만큼, 계획에 공을 들이는 것이 나의 일과이다. 그리고 일은 항상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MZ 아이돌 그룹 TWS도 노래하지 않던가,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라고. 첫 만남만 그러할까. 온갖 것들이 그러하지.


<출처-픽사베이: 길은 있으나 내가 걸을 자신은 없음>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그래서 계획을 시도 때도 못 지키는 나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꽤 긴데, 언제부터 그랬지 생각해 보니. 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그런 생각이 고착되었구나 싶다.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세상을 훑던 그 자유 시절이 나한테는 꼭 필요했던가 보다. 그 3년을 집에서 꾸역꾸역 버텨내며 나는 참 많이 우울하고 기운이 없었다. 덩치만 커지고 코어는 흐물흐물해졌다. 심지어 일터는 집이었기에, 조심조심 출퇴근하는 스릴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집 밖의 세상과의 소통이 콱 틀어 막혔던 동안에 생생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빠져나갔다. 사람들에게서 얻는 좋은 기운을 받지 못하고, 집에서 쌓이는 답답한 기분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고, 그렇게 보낸 세월 동안 나는 어딘가 단단히 고장이 난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자마자, 일을 못 벌여 안달이 난 사람 마냥 작년 한 해 동안 별별 시도를 다 해보았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한 것도 그 시도 중 한 가지였고. 마흔 평생 대학졸업장과 교사자격증 달랑 있던 내가 작년부터 몇 개의 자격 과정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땄는지 모른다. (심지어 당장 올해 상반기에 시험 볼 일도 두 건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건 또 뭘로 변명을 해야 할까.)


그러나 원래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관성을 사람은 이겨내기 어렵다. 나는 그렇다. 적당히가 좋고, 게으른 게 편한 나는 그래서 변명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다. 애써서 엄청 활기차게 살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남들이 괜찮다 해도 나는 왠지 부끄럽다. 그래도 최대한 세련되게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이유가 있다고. 이유를 감안해 지켜봐 주면 안 되겠냐고. 누군가에게는 눈에 거슬리고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할 말이 있다고.


작년 초 학습코칭전문가 과정을 공부할 때만 해도, “혜경, 정말 대단하다!” 칭찬과 감탄을 아끼지 않던 절친이, 작년 말, 과한 열정을 버티지 못한 나의 광기가 피로와 짜증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혜경, 너 미친 것 같아!” 해주었다. 나는 한참을 웃었고, 그 말에 완전히 동의했다.     


미친 것 같은 일상은 이제 좀 접어보고자. 정리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변명거리를 찾아 틈새를 메워보아야겠다. 다 메우고 정리를 하고 나면, 매끈한 그 길 위에서, 다시 나만의 패턴대로 루틴을 짤 수 있겠지. 


아마도 그럴 거다. 

아마도... 그렇...겠...지...?


<출처-픽사베이: 과한 열정은 결국 나를 제자리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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