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따식이가 아침 일찍 아빠를 깨우더니 SOS 구조신호를 보냈다. 수학학원 숙제가 있는데 문제가 풀리지 않자 따식이는 괴로워하였다. 아들의 눈빛과 목소리가 아비로 하여금 무거운 몸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문제를 보니 최대공약수(L)와 최소공배수(G) 문제였다. A=aL, B=bL, G=abL, AB=LG 라는 공식이 적혀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 열심히 문제를 풀어주었다.
따식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답만 적어줘" 나는 "답을 적는 게 중요한 게 아냐. 시간이 오래 걸려도 과정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 따식이는 당장 오늘 오후에 학원에 가야 하고, 또 시험도 쳐야 하는데 아빠가 자기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해했고,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나는 괴로워하는 따식이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하기 싫은데 타인이 짜 놓은 틀 안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맞춰야 할 때 느꼈던 그 고통이 느껴졌다.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서 피하고 싶은데, 타인의 기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혹은 이게 옳은 일이라서 부딪혀 싸워야 할 때의 그 두려움을 그 순간 따식이를 보며 나는 느꼈다.
아내가 와서 따식이를 위로해주었다. 아빠의 위로와 달리 엄마의 위로는 따식이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따식이는 갑자기 "밥 먹어야지!"하더니 식탁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푸짐하게 먹었다. 따식이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다시 문제와 싸우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따식이의 회복탄력성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 이제 따식이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구나 싶었다. 따식이에게서 중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된다는 게 실감났다. 그래도 나는 그날 하루종일 따식이 걱정을 하였다. 다음 날이 생일이라 더 신경이 쓰였다.
사실은 따식이 걱정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들에게 감정이입하여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낀 것 같다. 요즘 나 자신이 부족하고, 남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따식이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따식이는 웃으면서 집에 들어와 밥을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아내는 나에게 "따식이 혼자 학원에서 시험 100점 맞음"이라고 카톡을 보내주었다.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반전이었다. 내 앞에서는 그렇게 난리치더니 학원가서는 1등을 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따식이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따식아 생일 축하해. 네가 아빠 아들로 태어나줘서 아빠는 너무 행복해. 네가 착하고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주어서 정말 고마워. 어렵고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네가 아빠는 자랑스럽다. 너는 중학교에 가서도 잘 해낼거야. 아빠는 널 믿어. 아빠는 항상 널 지지하고 응원할거야. 사랑한다. 아들"
생일날 일찍 들어오라는 아들의 말을 듣고, 아빠를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일찍 약국 문을 닫고 예약한 딸기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정문에서 "아빠다!"라고 소리치는 아들을 보며 나도 힘을 내야지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해내는 큰 아들 녀석을 보면서 요즘 많이 배운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과 겹쳐보이기도 한다. 아들아, 네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이겨냈듯이 아빠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