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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교사 Apr 25. 2022

신뢰가 없다는 건

"선생님, 이안이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이안이 말로는 어제 선생님이 귀를 잡아당겼다고 하는데. 무슨 일 있었나요?"

"귀를 잡아당기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일 없었어요."

"잘 생각해봐요. 혹시 실수라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 


3년 전, 만 2세 반 교사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학기 초, 원장 선생님은 이안이 엄마의 민원 전화를 받고 나를 불렀다. 당최 이안이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하루 일과를 곰곰이 생각했다. '오전 간식을 먹고 자유 놀이하던 중 이안이는 피곤하다고 해서 쉼 매트에 혼자 누워있었다. 이후 점심 식사하고 낮잠 전 하원한 이안이인데, 내가 언제 귀를 잡아당겼다는 거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는 CCTV가 우리를 늘 지켜보고 있다. 특히 학기 초 영아들의 안정적인 적응을 위해 원장 선생님은 CCTV를 수시로 모니터링한다. 그 상황에서 내가 아이 귀를 잡아당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아, 혹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하루 3번 영아 발열체크를 한다. 영아는 성인보다 귓구멍이 작고 외이도가 휘어 있어 측정부와 고막이 일직선이 되도록 귀를 뒤로 살짝 젖힌 후 체온을 재야 한다. 아마도 이안이가 전후 사정없이 귀를 잡아당긴 것만 엄마에게 전달한 것 같다. 

출처 : 정보마당 > 생활 안전정보 > 귓속형 저외선 체온계 올바른 구입 및 사용방법 |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nifds.go.kr)


원장 선생님께 의심되는 상황을 말씀드리고 부모에게 전화하겠다고 하니 본인이 직접 한다고 했다. 평소 문제 상황이 있을 경우 부모와 교사가 서로 대화해서 오해를 풀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안이 엄마는 이 상황을 담임교사 모르게 알아보길 원했다. 담임교사가 알면 이안이를 더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선생님이 귀 잡아당겼어.'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다. 


영아들은 간혹 가장 기억에 남는 것만 부풀려 얘기하거나 상상 속 이야기가 진짜 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다 보니 부모-교사 간에 오해가 생기곤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학기 초 연령별 발달 특성 안내문을 배부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의구심이 들면 서슴없이 이야기해달라고 당부한다. 바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교사는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부모는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속을 썩일 수 있다. 

새학기 적응 기간은 교사-영아가 친해지는 시간이며, 교사-부모가 신뢰를 쌓는 시간이다. 재원 원아의 경우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로 부모와 친해지는 시간이 단축된다. 하지만 신입원아는 아이 적응뿐 아니라 부모와 관계 형성도 처음부터 다져나가야 한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교사는 어린이집에서의 모습을 부모는 가정에서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주로 등. 하원 시간 대면해서 정보를 공유한다. 또한 하원 후 가정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 전화도 한다. 원아 수첩을 작성할 때면 부모가 적어 온 내용에 대한 답변을 시작으로 아이의 하루 일과, 식습관, 배변 횟수와 상태 심지어 언제 웃고, 언제 인상을 쓰는지 등 사사로운 것까지 빼곡히 적어냈다. 

이안이는 신입원아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가야 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이안이는 등. 하원을 조부모와 했다. 조부모에게 이안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안내하지만 부모에게 전달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따로 시간을 내어 엄마에게 전화를 시도해도 엄마 직업 특성상 원활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원아 수첩에 연락 가능 시간을 물어보아도 묵묵부답이었다. 그 외 아무런 내용도 작성하지 않아 부모의 수첩 내용 확인 여부도 불가능이었다. 모든 것이 불통이었다. 그렇게 난 이안이 부모와 신뢰를 쌓지 못했다.


원장 선생님을 통해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다.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름 최선을 다했던 나는 억울한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자 이는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정말? 내가 그랬을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런데 왜 그런 오해를 했지?' 생각할수록 화가 올라왔다. '무턱대고 교사를 의심할 건 뭐람. 교사를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결국 슬픔이 나를 덮쳤다. '함께 하는 일 년의 시간 속에 진심을 담아 아이를 만나고 부모를 대했건만. 사소한 행동 하나에 내 노력이 쉽게 묻히는구나.'


부모 역시 말 못 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걱정이 앞설 것이다.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이하는지, 혹시 혼자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부모는 다양한 상상 속에서 전전긍긍할 것이다. 교사에 대한 의심도 들 수 있다.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교사와 부모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에 대해 공유해야 한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보다는 아이에 관해서는 속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교사도 노력하지만 부모도 입을 열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건네야 한다.


3년 전 그 사건은 나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린다. 그럼에도 부모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나의 부족함은 있다. 퇴근 이후 부모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등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어땠을까. 그 일을 곱씹을 때마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교사 경력 10년이 넘어가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늘 쉽지 않다. 오랜 경험으로도 예상할 수 없는 부모들을 만나면 보육교사로서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걸 느낀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교사로서 내가 수용하고 감당해야 할 몫인 걸.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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